시진핑 주석의 역사적 방한
마음 놓고 반기기는 어려워
날로 엄중해지는 안보 현실
어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은 역사적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중국 최고지도자가 북한에 앞서 한국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20여년 간 착실히 쌓아 올린 대중 외교의 상징적 성과다. 더욱이 어제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경제관계가 한결 밀접해진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실질적 정치대화가 가능한 사이로 발전했다. 양국 관계가 한층 돈독해지고 있음은 반갑다. 그러나 한중 양국 관계에 머물던 시야를 넓히면 반가움이 줄고 대신 걱정이 커진다.
우선은 시기적으로 너무 공교롭다. 또 ‘주권국 사이의 평등’이라는 이상과 달리 현실의 국제사회는 불평등 관계의 그물망이며, 한중 관계는 최소한 상대적 의미에서라도 중국의 주도권이 강하다. 더욱이 정상회담이 양국 간 유대 강화라는 직접효과 말고도 다른 관계국에 미칠 간접효과까지 고려하는 게임인데, 한국이 겨냥할 만한 간접효과를 찾기 어렵다. 애초에 ‘한국 먼저’가 중국의 결정이듯, 이번 외교게임 전체가 중국의 패에 좌우되는 특이한 구조다.
시 주석의 방한 이틀 전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정부는 집단적자위권의 행사가 가능하도록 헌법해석을 변경했다. 이로써 관련 법안의 정비만 거치면,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동맹국(미국)에 대한 공격에도 자위권 발동을 통한 무력행사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일본 정부는 이런 역사적 ‘해석 개헌’을 자위대 창립 60주년 기념일에 맞춰 단행했다. 사실상 군대와 다를 바 없고, 전력도 세계적 수준인 자위대에 우파 정부가 안긴 ‘환갑 선물’이다. 일본 우파의 오랜 숙원과, 일본의 막강한 군사적 잠재력을 중국 견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요구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이로써 한층 내용이 탄탄해질 미일 동맹은 동북아에서 중국의 세력 팽창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다.
중국이 이에 반발해 그 약화를 노릴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마침 전통적으로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기초가 돼온 한미일 3각 동맹의 한 축이 과거 어느 때보다 약해져 있다. 미일ㆍ한미 동맹으로 좌우를 삼은 3각 동맹의 아래쪽은 한일우호라는 점선으로 떠받쳐져 왔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 한일 관계가 더욱 소원해지거나 치유되지 않는 것은 중국의 이익에 들어맞는다. 최근 들어 눈에 띈 중국의 적극적 ‘역사 협력’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 한국이 호응하는 듯한 모습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을 자극한다. 이런 상황의 반복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크게 흔들렸던 한미동맹의 형해화(形骸化)로 이어질 수 있다. 장기(長期) 포석은 중국의 전통적 장기(長技)다. 더욱이 ‘북한 길들이기’라는 단기 목표에도 쓰임새가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은 가늠할 간접효과가 전무하다. 북한 문제가 그 동안 대중 관계의 정치적 동인이었지만,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고비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의 지렛대 역할은 크게 희석됐다. 당장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 틀이 물 건너 간 셈이고, 북한의 반발에 비추어 남북 대화의 중재역할도 중국에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은 대일 접근 등 중국의 변심(變心)에 대한 대응책을 가다듬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거꾸로 한중 양국의 과도한 접근은 한미동맹의 속살을 해칠 수 있다. 직접적 안보 위협인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한미동맹의 추가적 약화는 북의 군사도발을 가로막는 궁극적 안전판의 상실일 수 있다.
시 주석은 한국을 먼저 방문해 먹음직스러운 만두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내밀었다. 그 만두에 약한 독이라도 들어있거나 지나치게 기름기가 많아 장이 약한 체질에 맞지 않다면 베어 물어 슬쩍 맛 보는 데 그쳐야 한다. 지난해 공동성명과 달리 어제 공동성명에는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 중국의 은근한 요구를 생각하면, 미일 동맹과 한일 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우리 정부의 ‘균형잡기’라고 평가할 만하다.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국가 생존을 위해 앞으로도 살려나가야 할 지혜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