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독립경영 약속 지키려다 침몰, 이젠 통합을 논의해야 할 시점"
노조 "연임 위해 통합 서둘러" 반발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2012년 외환은행 인수 당시 약속했던 ‘5년 독립경영’이 아직 절반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 외환은행 노조의 거센 반발이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뇌관을 건든 것이다. 왜 그랬을까.
김 회장은 3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지금 당장 통합한다는 게 아니라 통합을 논의할 시점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나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두 은행의 행장, 직원, 이사회와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완곡한 표현이긴 했지만, 사실상 통합 논의를 공식화한 발언. 혹시라도 외환은행 노조를 자극할까 지금까지 입밖에 내지 못했던 얘기였다. 심지어 김 회장이 외환은행 공식 행사 참여조차 가급적 자제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이날 발언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진다.
김 회장이 통합 논의 카드를 꺼내든 배경으로 내세운 건 은행의 경영 악화였다. 그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침몰하는 배’에 비유했다. “먼저 한 약속을 지키자고 리더가 침몰하는 배를 바라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통합 이후 ‘투 뱅크’ 체제가 지속되면서 두 은행의 경쟁력이 동반 약화했고, 5년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하나은행은 작년 순이익이 2011년 대비 46%, 외환은행은 78% 감소했다. 특히 은행 이익의 근간이 되는 ‘구조적 이익(이자이익 + 수수료이익 ? 판매관리비)’ 역시 하나은행은 31%, 외환은행은 40%나 줄었다. 하나금융이 경쟁은행으로 설정한 신한은행(-28%)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성적표다.
이날 김 회장은 중국과 인도의 해외 법인을 둘러 보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귀국하자마자 간담회에 참석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하나ㆍ외환은행 통합법인(PT Bank KEB Hana)의 6월말 결산을 보니 성과가 좋았다”며 “역시 금융은 통합을 해야 비용도 절감되고 좋다”고 강조했다. 이우공 하나금융 부사장 역시 “투 뱅크 체제로 너무 오래 있다 보니 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지연된다는 우려가 많다”며 “외환은행은 규모에 비해 너무 비용이 많이 지출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런 방침에 따라 하나SK카드와 외환카드의 통합 작업도 속도를 낼 전망. 김 회장은 “카드사업 부문은 하나금융의 아킬레스건”이라며 “순익 개선을 위해 연내 카드사업 통합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연히 외환은행 노조는 반발했다. 노조 관계자는 “5년 독립경영을 보장하고 이후 합병 여부를 논의하기로 한 합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며 “합병 추진을 서두르는 것은 내년 3월로 임기가 끝나는 김 회장의 연임을 위한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통합을 둘러싸고 벌어질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의 대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