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한중 정상회담을 앞둔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다. 미중 양국의 패권경쟁을 감안하면 굳건한 한미동맹과 중국과의 관계 강화는 언뜻 서로 상충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까지 과거사문제와 집단자위권 행사로 한반도정세를 교란하고 있어 동북아의 퍼즐은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직면한 딜레마에 대해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과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외교부 2차관)는 “최대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한중관계 진전에 미국까지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우리의 선택은
정 총장은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은 집토끼”라면서 “시진핑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찾는 건 가능한 한국을 미국 편에서 떼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 주석의 이번 방한은 북한에 대한 불쾌감의 표시가 아니라 중국의 이익이 고려된 행보라는 해석이다.
때문에 정 총장은 중국과 주고받는 ‘이익의 균형’을 중시했다. 그는 “우리도 중국의 요구, 특히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경제적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필요가 있다”며 “대신 미사일방어(MD)체제의 불가피성을 비롯한 안보사안에 대해 중국을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반면 김 교수는 “한중관계는 한미관계에 미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한미 양국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에 기반을 둔 동맹으로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고 있다”면서 “이에 비해 한중관계는 경제협력을 기초로 외연을 넓혀가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중국과의 협력은 어디까지나 한미동맹의 신뢰를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양강 사이에서 경제적 실리를 찾는 방안은
정 총장은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에 대응해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종용하며 우리의 선택을 강요하는 난감한 상황에 대해 “미국이 싫어한다고 해서 무조건 안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얘기해야 한다”면서 “그것이 바로 동맹”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중국에 대해서도 미국의 입장을 내비치며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며 “그래야 미중 양국 사이에서 우리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한미동맹의 근본을 흔들지 않는 한 충분히 협의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AIIB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미국이 불필요하게 압력을 가한다면 따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상호교감과 대화를 통한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
북핵문제에 중국의 협조를 끌어낼 방도는
두 전문가 모두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지만 중국에만 의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우리가 먼저 청사진을 제시하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 총장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북한과 사이가 제일 좋은 중국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꼼수에 불과하다”며 “북한이 원하는 것을 중국이 들어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불용과 관련한 합의가 나오겠지만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라면서 “북한이 진정성을 갖춘 행동을 먼저 보이는 것이 선결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안을 내놓고 그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요구하는 것이 정석”이라며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여기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우리가 제시한 방안에 대해 동맹인 미국과 먼저 협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다만 미국이 과도하게 요구하면 정정당당하게 따질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일 공조 수위와 방향은
두 전문가는 ‘일본이 과거사 왜곡과 집단자위권 행사로 주변국을 자극하고 있지만 정상회담을 통해 한중 양국이 공개적으로 대응할 사안은 아니다’는 입장에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김 교수는 “공개적으로 일본의 역사인식을 규탄한다면 한중 대 일본의 대립구도가 되기 때문에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가 없다”며 “북한의 안보위협보다 과거에 얽매여 중국과 가까워진다는 인식은 자칫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대신 “중국과의 공동대응 보다는 일본과 당당히 논의하고 필요하면 유엔이나 국제기구를 활용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제안했다.
집단자위권 문제에 대해 김 교수는 “자위대가 한반도 부근에서 작전할 경우 우리의 허락을 받도록 입장을 관철하면 되는 문제”라며 “우리가 먼저 조바심을 내서 중국과 한 목소리로 비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정 총장도 “미국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는 마당에 중국과 공동대응을 한다고 떠들어봐야 공허할 뿐”이라며 “중국과 대놓고 대일 공조에 나서면 우리의 부담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일간 영토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타국의 주권사항에 대해 우리가 중재를 한다고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정 총장은 “잘못하면 독도 영유권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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