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교수직 어떻게 유지했나 의문
관행 덮고 키운 침묵과 외면 반성을
청문회 꼭 세워 비리 낱낱이 밝혀야
청와대는 도대체 뭘 보고 그를 뽑았을까. 9개 항목에 총 200개나 된다는 ‘고위공직 후보자 사전 질문서’의 답변을 검토하기는 한 걸까. ‘인사 참사’의 전형을 보여주는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 말이다. 내정 이후 꼬박 20일 간, 자고 일어나면 몇 건씩 새로 쌓이는 각종 비리 의혹의 가짓수를 세기도 이젠 민망하다.
김 후보자가 백년대계로 불리는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의 수장, 더구나 사회 각 분야를 아우르는 부총리로 격상된 자리에 절대 앉아서는 안 되는 이유를 더 따져 밝힐 필요도 없겠다. 논문 가로채기와 표절, 교수 임용ㆍ승진 과정에서의 반 윤리적 행태, 연구비 부당 수령 등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그는 장관은커녕 교수 자격조차 없다.
여전히 ‘네 탓’ 타령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일말의 기대마저 접은 지금, 내가 작정하고 따져 묻고 싶은 것은 어떻게 이런 사람이 20년간 아무 탈없이 교수직을 유지하고 여러 학회의 회장까지 맡을 수 있었느냐다. 표절 검색 프로그램만 돌려봐도 뻔히 드러나는 어설픈 눈속임들이 교수 임용이나 승진, 실적 심사 때마다 번번이 무사통과 됐다는 것도 놀랍지만, 명색이 교육자란 사람이 이런 잘못들이 만천하에 드러난 뒤에도 “관행이었다”는 말로 눙치고 넘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에 절망을 느낀다.
그가 그렇게 뻔뻔할 수 있는 까닭은 자명하다. 우리 학계가 세계적 웃음거리가 된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을 비롯해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 크고 작은 논문 부정 사건들을 겪고도 아직 학문의 기본인 연구윤리조차 바로 세우지 못했다는 얘기이고, 지도교수라는 명목으로 대학원생들에게 자기 집 애완견 보살피는 일까지 시키는 식의 ‘갑(甲)질’ 횡포가 우리 대학사회에서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최근 언론을 통해 김 후보자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편지를 보낸 한 제자는 ‘잘못이지만 계속 그렇게 행해져 와서 잘못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 잘못임을 알지만 고치려고 나서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사회악. 그것이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백 번 옳은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300여명의 귀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바로 그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무람없이 저질러진 온갖 탈법, 불법, 일탈의 참혹한 결과가 아닌가. ‘김명수 참사’ 역시 탐욕스런 한 교수의 문제가 아니라 크든 작든 그저 넘겨서는 안 될 잘못들을 관행을 핑계 삼아 덮고 키워 온 대학사회, 교수사회의 공동 책임 아닌가.
대학 교수를 죄다 논문 베끼고 제자에게 학위 미끼로 ‘갑질’이나 하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아는 교수들 중에는 왁자지껄한 술자리에서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데도 새로 쓸 논문의 주제를 공들여 설명하고 조언을 구하는 고지식한 분도 있고, 학과 사무실 복사기 앞에 길게 늘어선 학생들 틈에서 제 순서를 기다리거나 심부름을 자청하는 학생에게 ‘종질하러 학교 다니냐’고 되레 호통치는 분도 있다.
좀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성실한 연구자이자 훌륭한 교육자인 교수들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없지 않다고 본다. 대학은 돈 내고 필요한 지식과 시험의 기술만 얻어가면 그만인 사설학원이 아니라 구성원이 함께 지키고 만들어가는 ‘교육과 연구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관행이라는 괴물이 공동체를 뿌리째 썩게 하는 걸 보면서도 외면하고 침묵한 것, 그러는 사이 스스로도 관행에 슬그머니 젖어온 것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김 후보자가 교육부 장관이 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하지만 9일로 예정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 스스로 물러나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다. 자진사퇴가 당장은 불명예로 여겨지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집단 망각증세가 발동해 되레 그가 여권 일각의 허무맹랑한 주장처럼 “예수가 살아와도 통과하지 못할” 높은 인사검증 장벽의 희생양으로 둔갑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더 끔찍한 참사를 당하느니, 온 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 자리에 세워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의혹들에 대해 추상같이 따지고 낱낱이 해명하게 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관행 따위의 허튼 변명으로 넘길 수 없는 명백한 비리들을 가려내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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