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의 계보 집착은 유난하다. 유구한 영토 분쟁 역사 속에서 계급 모순은 잠복했다. 후손 선린의 훼방꾼은 소환된 조상이다. 한류란 접착제로 동북아를 묶자. 김수현은 무죄다.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 못지않다. 김수현 전지현에 대한 역사관 검증도 혹독하다. ‘별에서 온 그대’로 중국에서 사랑받고 있는 두 배우는 헝다그룹의 생수 광고 모델 계약을 했다가 ‘물벼락’을 맞았다. 원산지가 백두산의 중국 명인 ‘창바이산(長白山)’으로 돼 있음을 확인한 사람들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놀아났다”며 들고일어난 것이다. (…) 한류 스타에게 ‘백두산은 누구 것?’ ‘독도는?’이라고 묻는 게 현명한 일일까. 한중일이 서로에 중요한 교역국이듯, 한류도 국경을 넘나들며 유통되는 글로벌 상품이다. (…) 이들에게 역사관을 묻는 것은 해외 활동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 한류는 외교적인 힘까지 발휘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이 ‘한국 드라마 팬이에요’라고 했을 때 반일 감정이 잠시나마 누그러졌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 (…) 2008년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국가주석 방한 때 이영애 장나라가 그러했듯, 3일 시진핑(習近平) 주석 내외가 오면 김수현 전지현이 국빈 만찬에 초대받을 가능성도 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화해의 여지를 남겨두려면 경기장에서 그러하듯 문화 영역에서도 정치적 표현은 삼가야 한다. 양국 간 정치적인 관계가 냉랭하든 열렬하든 문화 교류는 뜨거운 것이 좋다.”
-전지현의 역사관(동아일보 ‘광화문에서’ㆍ이진영 문화부 차장) ☞ 전문 보기
“21세기 초 동아시아 국제사회는 겹치지 말아야 할 부분들이 겹쳐지면서 상호 공존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부추기고 있다. 공간적으로는 동해와 남중국해에서, 시간적으로는 20세기 초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전쟁 시대에 달갑지 않은 겹침이 일어나 끊임없이 파문이 일고 있는 것이다. (…) ‘아베와 고노담화’ 등 국가권력 차원의 일들은 접어두더라도, 최근 동아시아 3국의 시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민족주의-국수주의의 과잉 현상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 유럽 쪽은 자기네 사이에 어마어마한 대학살을 겪고 나서 이젠 더불어 사는 방법을 웬만큼 터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쪽 동아시아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일본 지식인 가운데 누군가는 독도에 대해 “그깟 섬 따위 한국에 줘 버리자”고 했다가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정치적 좌·우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국수주의자여야만 될 것 같은 이즈음, 세 나라 모두에서 이런 세련되고 멋진 정신이 자라나기를 오히려 기대하고 싶다. 국가주의의 폐해는 20세기의 인류가 이미 뼈저리게 경험한 바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구렁텅이를 향해 쇄도하는 들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정신이 번창해 국가주의의 과잉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김수현ㆍ전지현의 장백산 생수 해프닝(6월 30일자 중앙일보 ‘서소문 포럼’ㆍ정재숙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 전문 보기
잊고 있었다. 그는 여자였다. 아마 숨겨서일 거다. 대통령 얘기다. 남자 따라 하기는 여성의 생존 전략이다. 부친의 아들이었으면, 바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초(不肖)가 희망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리더로 운신하기란 쉽지 않다. 조금만 허점을 보이면 주위 남성들의 집중포화를 받는다. 박 대통령이 이런 공격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건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 덕분이기도 하다. 말수 적고 속을 드러내지 않는 특유의 처세도 한몫했으리라. 각 잡힌 거수경례에서 보듯 그는 아버지처럼 강력한 ‘군주’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여성’이란 수식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국정도 자신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남자 충신(忠臣)들과 꾸려왔다. 박 대통령이 여성 인사들을 만나 여론(女論)을 살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여성이되 여성이기를 거부하는 대통령. ‘원칙’이란 이름의 ‘불통’은 거기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 마키아벨리는 ‘군주란 민중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엄격하면서도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어렵다면 육영수의 ‘밝은 귀’를 지닌 참모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 아버지가 일군 압축 성장과 그 후유증이 남긴 적폐(積弊)를 척결하는 것이 딸의 숙명이라면 바닥 민심에 정통한 30~40대 ‘앵그리 맘’부터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여성 원로까지 두루 만나 그 통 큰 지혜와 슬기를 빌려야 한다.”
-육영수의 ‘귀’도 닮아야(조선일보 ‘김윤덕의 트렌드 돋보기’ㆍ문화부 차장) ☞ 전문 보기
“끝 모를 국정 공백을 우려하며 헤아려보니, 박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3년 반이나 남았다. 이 세월 동안 국민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관심 대통령’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 아시아에서 박 대통령에 앞서 최고 권력자가 된 여성은 9명이다. 모두 최고 권력자 혹은 정치 지도자의 부인이거나 딸이었다. 박 대통령 역시 대통령의 딸이다. 이들은 혈통과 가문을 배경으로 최고 권력을 거머쥐었다. 권력의 우산 아래서 안온한 삶을 살던 그녀들을 정치판으로 끌어낸 건 남편 혹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 영국의 대처나 독일의 메르켈과 같은 자수성가형 여성 권력자가 아시아엔 아직 없다. 아시아의 여성 권력자 중 ‘부인이거나 딸’이란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한 지도자로 기억되는 이는 별로 없다. 권력자로서 그들은 구중궁궐에서 극진히 대접받으며 제한적인 대인관계 속에 살아온 까닭에 인적네트워크가 허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측근 정치가 협소한 인재풀을 대신했다. (…) 201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사 참사’와 무능한 정부 논란이 계속될 지가 첫번째 관심 포인트다. 두번째 관심 포인트는 가족을 비롯한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 발생 여부다. (…) 박 대통령은 ‘가족의 배신’은 물론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로 곤욕을 치른 아시아 여성 권력자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세번째 관심 포인트는 민주화의 퇴행 여부다. 아시아의 여성 권력자 중엔 독재자의 딸이 있긴 하나, 자신이 독재자로 각인된 인물은 거의 없다. (…) 민주화의 기수가 아닌 보수우파의 상징적 아이콘인 박 대통령의 행보는 이들과 다르다.”
-‘관심 대통령’(경향신문 ‘정동칼럼’ㆍ김정인 춘천교대 교수(한국사)) ☞ 전문 보기
관심 병사 문제는 군대 안과 밖, 구조와 개인을 함께 봐야 해결할 수 있다. 부조리한 사회가 청년들 머릿속에 심은 뇌관은 비민주적 병영에서 쉽게 발화한다. 민군 공조가 해법이다.
“군인은 병력이나 자원이기 이전에 온전한 인권을 가진 ‘제복을 입은 시민’이다. 그 동안 군인의 인권으로 주장되었던 여러 가지 목록들은 군대에서 주는 시혜적인 혜택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다. (…) 고참의 괴롭힘, 간부의 부당한 지시, 폭언, 폭행 등 군기사고의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원인들은 대부분 근무시간 이후의 병영생활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일상적인 병영생활을 어떻게 유지하고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군대의 시각에서 아무리 개선안을 마련해 봐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간과 당사자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사고의 원인이 되는 병영문화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수년에 걸쳐 그 이행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전 인류가 합의한 기본적인 가치 (인권)로 중심을 확고하게 잡고,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민주주의)을 개선할 때에만 유사한 사고와 대책이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군대 사고, 민주주의와 인권으로 풀자(한국일보 ‘아침을 열며’ㆍ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부교수) ☞ 전문 보기
“관심병사 문제는 또래 청춘에게만 감당하라고 할 문제가 아니다. 어른이 해결해 줘야 할 몫이 있다. (…) 한데 군 생활 34년째인 한 장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해결 불가. (…) 2005년 연대장으로 만난 병사들은 달라져 있었다. (…) 아버지의 실직과 음주·가족 폭행 등의 사례는 수두룩했고, 부모가 서로 죽고 죽이는 광경을 목격한 청년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트라우마의 질이 달랐다. (…)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가 분석해 보니 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아버지의 실직이나 사업 실패의 그늘이 깊더라는 것이다. 외환위기라는 외부 충격으로 서민층 가정이 급격히 파탄 나며 충격을 입은 게 관심병사들의 정신적 문제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는 말했다. ‘군은 적과 싸워 이기는 병사를 길러 낼 임무가 있다. 일선 지휘관들이 늘어만 가는 관심병사들을 돌보는 일과 군인의 일까지 모두 할 수는 없다. 관심병사들 중엔 상담관들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아지는 사례도 봤다. 상담관을 늘리고, 민간 자원봉사자들이라도 와서 병사의 얘기를 들어주면 좋겠다. (…) 전방 사단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한 한 정신과 전문의와 이야기를 나눴다. (…) 지금 병사들의 정신적 문제는 군에서 해결하기 어렵고,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군생활이 정신의학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도 했다. 갑작스러운 큰 충격은 정신적 문제를 야기하지만 작은 고난을 많이 겪으면 큰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데, 군이 규율과 작은 고난을 단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이젠 정신적 토대를 단단히 하는 교육에 나설 차례가 아닌가 싶다. 이번엔 민간도 직접 도움을 줘야 할 것 같다.”
-왜 관심병사일까?(중앙일보 ‘양선희의 시시각각’ㆍ논설위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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