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엔 제발 양치기 소년이 아니길 바랍니다.”
지난달 30일 분당서울대병원과 SK텔레콤이 손잡고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방위부와 700억원 규모의 병원 정보 시스템 수출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접한 의료계의 한 인사는 대뜸 ‘양치기 소년’이라는 단어를 꺼냈는데요.
계약 내용 자체는 상당히 주목 받을 만 합니다. 우선 앞으로 2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방위부 소속 6개 병원(우리로 치면 국군병원)에 분당서울대병원이 개발한 병원 정보 시스템을 깔아주고 거기다 더해서 사우디 측과 함께 손잡고 합자회사를 만들어 이 회사가 사우디를 포함해 다른 중동 지역에 병원 정보 시스템 수출을 시도해 보자는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이 소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냉랭한’ 분위기가 의료계에는 짙게 깔려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안 ‘의료 수출 쾌거’라는 단어와 함께 여러 차례 ‘해외에 병원을 짓는다’ ‘의료 기술을 팔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실제 돈을 벌었다는 결과는 거의 없습니다. 이번 계약도 재탕일 것이라는 예상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이번 수출 계약 당사자들은 펄쩍 뜁니다. 이번은 다르다는 것인데요. 이번 계약을 따내는데 중간 다리 역할을 한 KOTRA 관계자는 “그 동안 대부분 수출했다는 내용은 실제 계약 이전 단계인 양해각서(MOU) 수준이었다”며 “이번에는 구속력 있는 실제 계약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예전처럼 정부 고위 인사가 와서 사인을 하는 식의 떠들썩하게 하지 않고 극비리에 진행했다”며 “계약서에 사인을 한 다음에 외부에 알렸다”고 했습니다.
이번 계약이 이전 다른 계약과 좀 다른 점은 병원과 관계 당국만 나섰던 다른 건과 달리 대기업 SK텔레콤이 참여했다는 점인데요. 분당서울대병원 고위 관계자는 “병원만 나서서 계약을 하자고 하면 상대방 측에서 떨떠름하게 보는데다 우리를 못 믿겠다는 것인지 지불보증을 서야 한다고 요구했다”며 “SK텔레콤이 그 역할을 해 준 것이고 상대방도 대기업의 참여에 상당히 고무됐었다”고 전했습니다. 서울대병원과 SK텔레콤은 2012년 ‘헬스케넥트’라는 헬스케어 관련 합작회사를 세웠고, 그 때부터 양측은 해외 의료 수출에 대한 교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2003년 개원 때부터 ‘종이 차트 없는 병원’을 표방하며 전자 진료 시스템(EMR)을 국내 대형 병원 중 처음 도입했고, 꾸준히 병원의 모든 정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해왔습니다. 자체 개발한 차세대 병원정보시스템은 지난해 미국의료정보경영시스템 학회의 ‘월드베스트 병원정보시스템’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병원(하드웨어)이 아닌 의료 정보 시스템(소프트웨어)을 수출하게 됐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을 만 합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는 정부나 관련 기관들의 ‘업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 잘 되면 계약 해봅시다’ 정도의 MOU를 가지고 계약이 성사됐다는 식으로 과장홍보하는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사우디를 포함한 해외 정부나 기관들) 입장에서는 구속력 없는 MOU를 지킬 의무도 없고 더 좋은 상대방이 나타나거나 조건이 맘에 안 들면 ‘엎어 버리기’ 일쑤였죠. 물론 MOU를 했으니 계약까지 가는 게 자연스럽게 여기는 게 우리의 정서지만 의뭉스럽기로 유명한 중동 사람들한테는 ‘싫으면 말구’라는 정서가 있는 것도 이런 상황을 만든 원인 중 하나입니다. 비단 의료 수출뿐만이 아닙니다. 대통령 해외 순방 중에 이뤄지는 수많은 자원외교 결실들도 대부분 MOU 입니다. 심지어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노무현 정부 시절 MOU를 했던 내용과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MOU를 맺은 경우도 있습니다.
과연 분당서울대병원과 SK텔레콤은 양치기 소년이 될 지 아니면 진정한 의료 수출 역군이 될 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입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