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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강제 동원, 일본 역사 교육자들도 이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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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강제 동원, 일본 역사 교육자들도 이견 없어

입력
2014.07.0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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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 역사 교사 공동 집필 '마주 보는 한일사' 13년 만에 완간

독도 문제에선 첨예하게 대립, 양국 입장 제시하는 선에서 봉합

"인권·평화 측면에서 기술 노력, 세계 시민의 눈으로 역사 응시하길"

박중현 서울 잠일고 교사가 ‘마주 보는 한일사’ⅠㆍⅡㆍⅢ 시리즈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이 2001년 일본의 역사교육자협의회에 제안해 공동 집필한 역사 교재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hk.co.kr
박중현 서울 잠일고 교사가 ‘마주 보는 한일사’ⅠㆍⅡㆍⅢ 시리즈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이 2001년 일본의 역사교육자협의회에 제안해 공동 집필한 역사 교재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hk.co.kr

2012년 8월 일본 지바현의 한 교실. 한국인 교사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을 알고 있지요?” 일본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40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 참사를 학생들은 이미 배워 알고 있었다. “그럼 그때 6,000명이 넘는 한국인이 학살된 사실은요?” 학생들은 의아스런 표정을 지었다. 대지진 이후 사회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한국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자경단이 한국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실은 일본 학생들에게 낯선 역사였다.

2013년 10월 서울 송파구의 한 고교.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일본인 교사가 질문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게 된 계기요.” 한국 학생들이 답했다. “이 사건으로 일본인 20만명이 죽었고 그 중 2만명은 조선인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나요?” 시큰둥하던 학생들 눈빛이 반짝였다. “원폭 피해자의 후손들은 지금도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수업이 끝날 무렵, 학생들 사이에 “전쟁 피해자는 결국 민간인일 수밖에 없다”는 공감이 퍼졌다.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일본의 역사교육자협의회 소속 교사들이 양국을 오가며 한 수업으로, ‘마주 보는 한일사 Ⅲ’을 집필하며 했던 교류 교육이다. 지난해 서울에서 했던 수업은 ‘마주 보는 한일사 Ⅲ’의 원고가 토대였다.

‘마주 보는 한일사’ 시리즈는 2001년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제안으로 두 단체의 교사와 교수들이 만든 공동 역사교재다. 선사시대부터 개항기까지 두 나라의 역사를 다룬 ⅠㆍⅡ권이 2006년에 나왔고, 근현대사를 기술한 마지막 책이 이번에 출간됐다. 이로써 13년의 공동 집필이 종지부를 찍었다.

Ⅲ권은 ▦근대국가의 수립, 근대인의 생활방식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 지배와 해방 투쟁 ▦전쟁, 그리고 평화를 향한 긴 도정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 ▦평화 공존의 동아시아를 위하여 등 5가지 주제로 31개의 소재를 기술했다. 한국 12명, 일본 18명 등 양국의 역사 교육자 30명이 함께 썼다. 작업이 시작된 2007년부터 양국의 교사들은 매해 방학마다 두 나라를 오가며 주제를 정하고 원고를 다듬었다.

기획과 집필에 참여한 박중현(54) 서울 잠일고 교사는 “두 나라의 시각이 상반되는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당시 양국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시각을 보여준 역사 교재”라고 설명했다. 책의 이름이 ‘마주 보는 한일사’인 것도 이 때문이다.

Ⅲ권 한일 근현대사에는 일제 침략기, 일본군 위안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양국의 견해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주제들이 밀집해있다. 집필 과정에서 조율도 쉽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독도가 가장 골칫거리였다. 독도는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영유권 분쟁이 있을 수 없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영토지만 일본 교사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견해가 맞서자 이럴 바엔 주제에서 아예 빼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독도 논쟁’으로 책의 출간이 2년 늦어졌다. 박 교사는 “독도를 언급하지 않고는 양국의 미래를 논할 수 없어 포함은 시켰지만, 일본 교사들 역시 자국 영토라는 주장에서 물러서지 않아 결국 두 나라의 주장과 근거를 각각 제시해주는 선에서 그쳤다”고 설명했다. 독도 문제를 다룬 마지막 단원의 이름이 ‘독도와 다케시마’인 것도 그래서다.

반면 위안부 문제에서는 일본의 역사 교육자들도 이견이 없었다. 책은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만들었고 한국뿐 아니라 필리핀, 중국, 동티모르 등 일본이 강제 점령한 나라에서 여성을 강제 동원해 성노예로 학대한 사실을 적시했다. 일본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와 1990년대까지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등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았던 전시 성폭력도 다뤘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이를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의 피해 사례를 중심에 뒀다. 이는 사람을 주어로 역사를 해석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에 맞선 한국 민중의 저항, 전쟁과 제국주의를 반대한 일본 시민사회의 움직임, 한국 대추리와 일본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도 담았다.

박 교사는 “한국이나 일본이라는 국가의 틀을 벗어나 인권과 평화의 측면에서 역사를 기술하고자 했다”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위안부 문제도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잘못’이라기 보다 ‘인간에 대한 국가의 전쟁범죄’이므로 사죄와 반성, 배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데 일본도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사는 “한일 양국의 학생들이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으로서 역사를 바라보고 교훈을 깨닫길 바란다”며 “양국의 역사교육 현장에 ‘마주 보는 한일사’가 밑거름으로 쓰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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