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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을이 돌봐 온 '철길 위 공부방'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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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을이 돌봐 온 '철길 위 공부방' 지켜주세요

입력
2014.07.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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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정7동 은정초등학교 안에 14년 동안 운영해 온 지하철공부방

신정차량기지 직원들 후원으로 시작, 반찬부터 학습지원까지 주민 동참

교육청서 "교내 있으면 안돼 나가라" 정부 정책과도 배치…재고해야

서울메트로 신정차량기지 직원들의 후원과 은정초등학교의 장소 지원으로 14년간 운영된 은정지하철지역아동센터에서 반성화(오른쪽) 교사와 한 학생이 활짝 웃으며 아이들을 맞고 있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서울메트로 신정차량기지 직원들의 후원과 은정초등학교의 장소 지원으로 14년간 운영된 은정지하철지역아동센터에서 반성화(오른쪽) 교사와 한 학생이 활짝 웃으며 아이들을 맞고 있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서울 양천구 신정7동 276번지. 은정초등학교와 서울메트로 신정차량기지가 나눠 쓰고 있는 지번(地番)이다. 신정차량기지 위로 지붕처럼 덮인 인공대지에는 은정초와 대규모 임대아파트촌이 들어서있다. 방과후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은정초와 서울메트로는 지번뿐 아니라 돌봄까지 14년째 나누고 있다. ‘마을이 곧 학교’라는 생각에서다.

지난달 27일 오후 은정초 건물 한 켠에 마련된 은정지하철지역아동센터(은정지하철공부방). 공부방 운영위원장인 이여철(53)씨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와 매달렸다. “껌 아저씨다! 껌 주세요~.” 은정초 2~5학년 학생 14명이다. 30년째 전동차를 몰고 있는 이씨는 기관사에게 졸음 방지용으로 나눠주는 껌을 모았다가 공부방 아이들에게 준다.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뇌물’이다. 그는 “비번이나 휴무일 때 언제고 찾아와서 아이들과 뒹굴면서 논다”며 “내가 아이들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힘을 얻는 느낌이 든다”며 웃었다. 이 공부방은 신정차량기지 직원 400여명이 매달 3,000~1만원씩 내는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부방의 시작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환위기 이후 지역에 결식아동들이 늘자 신정차량기지 직원들은 식권 1~2장씩을 모아 구내 식당에서 아이들의 식사를 챙겨주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차량기지에서 전동차 검수 업무를 하는 임윤화(46)씨는 “밥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발전했고, 은정초, 지역 복지관, 학부모들과 오랜 논의 끝에 공부방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은정초에서 제공한 주차장 자리에 차량기지 직원들이 벽돌을 쌓고, 바닥에 전기온돌판넬을 깔아 아이들의 공간을 만들었다. 임씨는 “단일 직장에서 지역 아이를 위해 공부방을 운영하는 건 우리가 전국 최초”라고 말했다. 공부방에 대한 직원들의 애착과 자부심은 대단했다.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 수리공, 야외활동 나갈 때 운전기사가 돼 주는 건 모두 직원들이다. 방학때 떠나는 1박2일 캠프에서는 베개싸움과 말뚝박기를 함께 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공부방이 자리 잡으면서 “전동차 때문에 시끄럽다”는 주민들의 민원도 사라졌다.

지역사회의 도움도 컸다. 양천생활협동조합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제공하고, 인근 고교의 과학동아리 학생들은 과학실험을 하면서 아이들과 어울린다.

공부방의 반성화 교사는 “졸업한 아이들도 시간 날 때마다 찾아와 후배들과 놀아준다”며 “지역사회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기 때문에 아이들이 비뚤어지지 않고, 잘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공부방이 최근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있다. 지역교육청과 학교측이 공부방에 공간을 비워줄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정식 위탁 공모에 따른 계약을 하지 않았고, 학교 안에 타 시설이 들어와 있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은상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국장은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주의”라며 “현 정부의 방과후돌봄 정책에도 맞지 않는 만큼 교육청과 학교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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