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6기 경북호 특집 기고문]
정문수(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장)
바다는 사람, 물자, 문화의 교류를 차단한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촉진시켰던 고속도로였다. 지구 전체가 바닷길로 연결된 것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류가 이른바 ‘노호하는 40도대’(roaring forties, 태평양과 대서양 남위 40-50도 사이의 폭풍해역)를 넘어 항해하고 세계의 고정된 바람의 시스템을 숙지한 것이 이 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 전체는 아니더라도 해역이 권역별로 연결된 것은 훨씬 이전의 시기까지 소급된다. 특히 항해자들이 인도양의 계절풍을 숙지하고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해역을 연결시킨 것은 8세기경이다.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대학교의 후원을 받아 경상북도가 추진하는 해양실크로드 탐험대가 9월부터 약 45일간의 여정으로 8세기에 이미 활성화된 이 바닷길을 재현한다. 이란의 서사시 ‘쿠쉬나메’, 신라의 처용설화, 혜초의 순례길, 그리고 장보고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선조들이 이 바닷길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경주-포항-광저우-말라카-뭄바이-반다르압바스-콜롬보에 이르는 바닷길의 재현이 갖는 21세기적 의미는 무엇일까? 신라와 고려 시대 바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우리민족의 해양 DNA를 확인하고 그것을 통해 해양강국으로의 진입을 위한 동력을 모색하기 위한 것일까? 근대 이후 유럽의 탐험가들과 정복자들이 상대적 빈곤에 대한 대응으로 바닷길을 적극적으로 개척했고 그 결과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국가들을 제치고 열강의 대열에 들어섰던 역사적 경험 때문에 바다를 통한 국부론은 그럴 듯 해 보인다. 더욱이 오늘날 바다는 해상교통로 이외에 어업자원, 석탄ㆍ석유, 광물자원, 재생에너지 등 자원의 보고, 그리고 국경과 국방의 핵심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해양실크로드 프로젝트는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패권적 세계관을 넘어 관용과 공생을 통한 다원주의적이며 상생적인 가치관을 표방한다. 세계를 중심과 주변의 양극구조로 나누고, 지배와 종속을 통해 가치의 일원화?균질화는 21세기 보편다양성과는 구별된다. 타문화에 대한 관용과 상호간의 혼종을 통해 생성되는 역동성은 바다의 물리적 철학적 속성에서 나온다. 우리말의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이런 큰 밑그림 아래 해양실크로드 역사문화 재조명,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기록ㆍ홍보사업이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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