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홍명보호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들고 30일 오전 4시45분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지난달 30일 장도에 올라, 정확히 한달 만에 고국 땅을 밟았지만 축구 대표팀을 향한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최순호 부회장 등은 선수단과 일일이 악수하며 선수단의 노고를 격려했다. 하지만 이 때 일부 성난 팬들이 미리 준비해온 호박엿 사탕을 집어 던졌다. 선수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선수들 발 밑으로 떨어졌다. 팬들의 삐뚤어진 불만 표출 방식에 가뜩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선수단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한국 축구는 이번 대회에서 1998년 프랑스 대회 이후 16년 만에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짐을 쌌다. 조별리그 첫 경기 러시아전은 상대 골키퍼 실수로 무승부를 거뒀고, 1승 상대로 점 찍었던 알제리한테는 2-4로 무너졌다. 벨기에전에서는 상대 선수의 퇴장으로 수적 우위를 점하고도 0-1로 졌다.
대표팀을 바라보는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가운데 지난 29일 귀국 비행기에 오른 골키퍼 정성룡(29ㆍ수원)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국에서 봐요. 월드컵 기간 아니, 언제나 응원해주신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더 진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다 같이 퐈이야(파이팅의 센 발음 버전으로 최근 유행어)”라는 글을 올려 뿔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논란이 일자 정성룡은 이 글을 하루 만에 삭제했다.
홍명보(45) 대표팀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부진한 성적에 대해 “월드컵 기간 국민 여러분이 성원을 보내주지 못했는데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막내 손흥민(22ㆍ레버쿠젠)은 바닥에 떨어진 호박엿 사탕을 보고 “이 엿을 먹어야 하나요?”라며 침통한 마음을 전한 뒤 “너무나도 슬프다. 대한민국 선수로서 좋은 성적을 못 내고 온 것에 대해 당연히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장 구자철(25ㆍ마인츠) 또한 “우리는 부여 받은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최선을 다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해 굉장히 안타깝다”고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홍 감독과 구자철, 손흥민의 귀국 인터뷰가 끝나자 대표팀 안티 인터넷 카페 ‘너땜에졌어’ 회원들은 ‘근조, 한국축구는 죽었다’라고 검은 글씨로 쓰인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호박 엿 사탕을 선수단에게 던진 카페 회원 조모씨는 “인맥으로만 선수를 기용한 끝에 월드컵에서 실패했다”면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홍 감독에게 ‘너는 영웅이 아니고 죄인’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금도를 넘은 불만표출 방식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홍 감독의 용병술 실패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그렇다고 대표팀 귀국장에서 엿 사탕을 던지고 근조 플래카드를 내거는 팬들의 화풀이 는 결코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대다수 축구인들은 한국 축구의 브라질 월드컵만 끝났을 뿐이지 한국 축구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도가 지나친 표현은 한국 축구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신문선(56) 명지대 교수는 “축구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팬들의 반응을 이해하면서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한 원인을 여러 가지 분석 도구를 활용해 차분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이번 실패를 철저히 분석해 역사로 남겨 놓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 안 한다”며 “포퓰리즘을 생각하기보다 앞으로 아시안컵은 어떻게 치를지, 홍 감독으로 계속 가는 것이 나을지 등 냉정하게 돌아보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일본을 벌써 차기 감독을 내정하는 등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월드컵 기간 잠시 중단했던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은 5일부터 재개한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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