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향기]
안진의 화가
아침을 먹던 딸아이에게 이번 GOP 총기 난사의 원인이 ‘따돌림’에 있다는 기사를 읽어주었다. 전방의 병사가 평소 동료 병사에게 무시를 당하였고, 사건 당일 자신을 놀리고 비하하는 내용의 글과 그림을 보고 격분하여 일을 저질렀다고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랬다. 요즈음 학급에서 교우관계로 적잖이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기에 ‘따돌림’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던 터였다.
총기나 폭발물을 다루는 군부대라는 특수 상황에서 ‘따돌림’은 큰 문제를 야기한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군부대의 총기 사건이 오늘의 일만이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으며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도 마찬가지이다. 오랫동안 우리 아이들을 괴롭혀 온 문제이다.
이러한 집단 따돌림의 뒤에는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갈등의 양 당사자가 각각 다수일 때는 집단적인 따돌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갈등의 한쪽이 소수일 때 다수에 의한 따돌림이 발생하게 된다. 이번 총기 사건의 원인도 한 명의 병사와 다수 부대원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사회의 어느 집단에서나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갈등(葛藤)은 글자 그대로 칡과 등나무를 뜻한다. 칡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그래서 두 식물이 만나면 마치 새끼가 꼬이듯이 뒤얽히게 되는 모습을 갈등이라 한다.
서로 다르게 감아 올라간 갈등은 풀기도 힘들 뿐더러 방치했을 때는 더 얽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갈등을 없애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얽혀있는 칡과 등나무를 단숨에 베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베어진 두 식물은 당분간은 얽혀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선택한 방법은 이런 식이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쉽게 갈등을 봉합하려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해가 바뀌면 두 식물은 베어진 상처 아래로 각각 싹을 내고 덩굴을 뻗어 결국은 또다시 꼬이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비슷한 일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는 것이 아니고 갈등을 받아들이고 관리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갈등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군대, 학교, 직장, 가정을 가리지 않는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식물이 서로를 옥죄며 얽히게 되는 과정을 겪고 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러나 갈등의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 갈등을 대충 봉합하거나 베어내려 하지 말아야 한다. 갈등의 양상을 면밀히 살피고 두 식물을 모두 살려내며 풀어줄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
학급 내 교우관계로 고민하고 있는 아이에게 당부한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었다. 겸손하고 착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라는 것이었다. 관계란 상대적인 것인 만큼 다른 아이들이 미워한다고 주관 없이 동참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도 생각해보라는 의견을 주었다.
아이의 담임선생님도 적극적으로 학급 내 왕따 문제를 관리하려고 노력하셨다. 가급적 거리가 있는 친구들끼리는 관계를 좁혀주기 위해 놀이나 체험활동 등에 짝을 이뤄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생길 수 있도록 애쓰셨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셨다. 이런 노력도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지 않고 인정하고 풀어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맹자의 말씀 가운데 사단(四端)이 있다. 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착한 마음의 측은지심(惻隱之心),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고 남에게 양보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의 분별력을 갖는 마음의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갈등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갈등은 관리해야 한다. 목표가 없는 갈등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이다. 인간을 존중하는 사단(四端)의 실천 도덕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갈등을 관리한다면 칡은 푸르른 덩굴을 높이 뻗을 것이고, 등나무는 탐스러운 꽃을 피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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