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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

입력
2014.06.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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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소설가
김사과 소설가

나는 산다. (물건을 산다.) 나는 산다. (삶을 산다.) 한국말로는 이렇게 소비와 삶을 하나의 동사로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은 조상들의 선견지명이었는지 실제로 요즘 우리의 삶은 소비와 구분되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는 사야 한다. 물론 사는 것이 인생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소비 외에 대체 어떤 다른 것이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희노애락의 감정이 얼마나 많은 부분 소비에 의존하는지, 우리가 타인을 얼마나 진열대에서 하나 꺼내 들어 카드를 긁듯 대하는지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그저 사는 것에 불과한 게 맞다.

그렇다면 무엇을 사고 있는가. 전부 다 사고 있다. 전부 다 팔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파는 것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돈으로 다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실은 구매가능한 한정된 목록들로 삶을 축소시키고 있는 것 뿐이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광고는 돈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너는 자유롭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소비 이외의 것들을 망각하게 하는 주문에 가깝다. 실제로 우리가 그 유혹에 푹 잠겨 있는 동안, 소비를 제외한 권리를 거의 다 잃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목소리 높여 소비자의 권리를 말한다. 살 수 있는 자유. 그것도 물론 자유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세상에서 제일 역겨운 자유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자유는 사지 않을 자유다. 사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자유. 돈이 없어도 죽지 않을 자유. 소비자가 아니어도 인간으로서 존중 받을 수 있는 자유. 돈이 없어도 아름다움을 누릴 자유. 그런 것들을 우리는 박탈당했다. 미로같은 신식 쇼핑몰에서 길을 잃으며, 라스베이거스의 도박판보다 더 화려한 인터넷 쇼핑몰들을 클릭질로 오가며, 지르고 또 지르는 것은 자유라기보단 강요된 습관에 가깝다. 소비 외에 모든 활동이 박탈되어 있으므로, 쳇바퀴를 돌듯 몰두하는 것 뿐이다. 소비의 즐거움? 그런게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그러한가? 아니 소비의 즐거움이라니 그런게 진짜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혹은 택배 상자가 집으로 도착할 때마다, 우리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잠시 황홀감에 취한다. 왜냐하면, 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그래야 하니까. 그렇다고 배웠으니까. 다들 그런 것처럼 보이니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특히 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물건을 사는 행위의 어디에 즐거움이 내포되어 있는지 분명치 않다. 광고가 점점 더 즐거움으로 가득 차고 쇼핑몰이 놀이공원화하는 것은 오히려 소비행위가 고통에 가깝다는 진실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이 점을 명확히 할 때가 되었다. 사는 것은 즐거움과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사고 싶지 않다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살기 위해 사야 하는 현실에 대해 틀렸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현명한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균형 잡힌 소비를 하라고. 또 다른 좋은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좋은 소비를 하라고. 혹은 깨달은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소비를 멈추라고.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가라고. 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건 한여름 꿈에 가까운 상상이다. 우리 나약한 도시인들은 결코 내적 혁명에 도달하지 못한 채 쇼핑중독에 시달리며, 3세계에서 아동착취를 통해 생산되는 저가 상품을 찾아 헤맬 것이고, 역겨운 쇼핑몰 도시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타인들이, 사회가,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작은 택배 상자로 축소되어 버렸다.

현실의 삶에 염증을 느낀다고 해서 산으로 들어가는 식의 과감한 결정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우리들 대부분은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더욱 말해야 한다. 이 곳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더 나은 쇼핑몰이 아닌, 쇼핑이 아닌 삶이라고. 사지 않을 권리, 진짜 자유를 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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