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봄날은 간다' 연출가 김경익 "가족 해채 세태에 경종 울리고 싶어"
‘봄날은 간다’는 식상한 제목이다. 노래와 영화 등에서 여러 차례 제목으로 사용됐고, 동명의 악극이 무대 위에 오르기도 했다. 제목을 공유하는 만큼 각 콘텐트의 분위기 역시 대동소이하다. 가장 화려했던 또는 행복했던 순간이 지나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한다.
연극 ‘봄날은 간다’도 이 문법에서 자유롭지 않다. 연극은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난치병에 걸린 아내, 그리고 암울한 현실에서도 애써 희망을 찾는 남편에 대한 얘기다. 28일 서울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에서 연출가 김경익(46)씨를 만나 어쩌면 너무도 뻔한 이 연극에 대해 물었다.
“부부도 원래는 남남이잖아요.”
당연한 듯 들리는 이 한 마디에 연극의 핵심 메시지가 녹아있다. ‘봄날은 간다’에 등장하는 가족 구성원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채 어머니, 딸, 아들로 살아간다. 그리고 딸과 아들이 어머니의 반대를 뿌리치고 결혼해 또 다른 가정을 꾸린다. 연극은 생면부지인 세 사람 사이의 복잡한 관계 변화를 통해 가정의 의미를 혈연관계에서 사회적 관계로 확장시킨다. 김경익 연출가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가족의 따뜻한 순간을 조명해 가정이 해체돼가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 ‘봄날은 간다’는 2003년 초연됐던 작품이다. 극단 진일보가 ‘우수공연 레퍼토리화’ 두 번째 작품으로 선정해 다시 무대에 올렸다. ‘봄날은 간다’를 레퍼토리화 작품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김경익 연출가는 “서울에서 두 번째로 연출한 작품이고 초연 당시 동아연극상 3개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이라며 “굉장히 아껴두었던 작품인 만큼 꼭 한 번 다시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10년 전과 비교해 내용에서 큰 차이는 없지만 공간 구성과 배우들의 동선, 조명에 차별화를 뒀다. 복잡하게 구성된 극의 시간적 배경을 관객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극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 때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부부에서 남매로, 다시 남매에서 부부로 바꿔줘야 한다. 그럼에도 무대배경이 동네 뒷동산으로 한정돼 있어 관객에게 시간의 전환을 전달하기 어려운 구조다. 김경익 연출가는 “관객이 시간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무대공간을 분할하고 조명의 농담(濃淡)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연극을 끝까지 보고 나면 이 연극이 동명의 다른 문화 콘텐츠와 차별화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거를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대상이 아닌 더 따뜻한 미래를 위한 자양분으로 삼는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싹 틔우는 이 연극은, 그래서 오히려 봄날을 불러온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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