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사들 전국 2만여개 편의점에 매달 수십억 쏟아부어 POP 광고 관련 법규 미비에도 원인 있지만 단속 의지 없는 정부 태도도 문제 "담배판매 관련 법규 전면적 손 봐야" WTO도 소매점 담배 진열 경고
“엄마, 저게 뭐야? 그림 멋있다.” 네 살배기 딸과 동네 편의점을 찾은 주부 김혜미(40)씨는 순간 말을 잊지 못했다. 딸이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본 것은 유명 담배업체의 담배 광고였기 때문이다. 번쩍번쩍 빛나는 담배광고에 딸은 눈을 떼지 못했다. “어, 여기도 똑같은 그림이 있네”라며 담배광고에 호기심을 보이는 딸 때문에 김씨는 되도록 딸과 편의점을 가지 않게 됐다. 하지만 딸이 좋아하는 사탕과 과자가 즐비한 편의점을 가지 않을 수도 없어 걱정이 태산이다.
KT&G 등 담배업체들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편의점에서 무차별적으로 담배광고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를 단속할 법규도 없고, 행정당국도 손을 놓고 있다.
국내 담배시장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KT&G는 현재 전국 2만4,000여 편의점에서 담배광고를 하고 있다. KT&G는 월별로 ‘CU' 'GS 25' '세븐일레븐’ 등 국내 5개 편의점 본사와 연간계약을 체결해 월별로 광고유지비를 지급하고 있다. 편의점 업주들은 매월 편의점 본사로부터 담배광고 설치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시장에서는 매월 1개 편의점 업자가 최소 30만원 이상 담배광고 유치에 따른 지원금을 받는다고 한다. 30만원만 가정해도 KT&G의 매월 편의점 광고예산은 72억원에 이른다. 연간비용으로 따지면 864억원. 여기에 편의점 본사 몫까지 더하면 상상을 초월한 비용이 발생한다.
국내 담배 시장점유율 2위 업체인 필립모리스도 KT&G와 같은 방법으로 편의점에서 광고하고 있다. 필립모리스는 2만0,000여 전국 편의점에서 담배를 광고하고 있다. 필립모리스가 KT&G보다 대상 편의점이 작은 것은 일부 편의점은 외국산 담배를 취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JTI코리아, BAT코리아 등의 담배업체도 편의점에서 담배광고에 나서고 있다. 편의점이 담배홍보의 전초기지인 셈이다.
담배업체들이 편의점을 이용한 담배광고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관련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과도한 담배광고를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는 법은 ‘국민건강증진법’과 ‘담배사업법’이다. 국민건강증진법은 보건복지부가, 담배사업법은 기획재정부 소관이다.
문제는 편의점 내에서 만연되고 있는 담배업체들의 ‘POP(Point of Purchase Advertisement)’광고를 이들 법을 통해 규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POP 광고는 광고상품이 소비자에게 최종적으로 구입되는 장소인 소매점 등에서 광고물을 제작, 광고효과를 직접 얻게 하는 구매시점 광고로 대량진열 등의 진열법, 오디오비주얼, 디스플레이 등의 방법을 활용한 광고다. 편의점 계산대 뒤 담배판매대, 계산대 옆에 위치해 불빛을 내고 있는 담배광고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국민건강증진법과 담배사업법에서는 영업소 외부에 광고내용이 보이게 전시하거나 부착한 담배광고는 위법이라 명시했다. 하지만 편의점 내 담배광고는 고의적으로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광고를 금지할 수 없다. KT&G 등 담배업체들도 이와 관련 로펌 등 법률자문을 통해 문제 없음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소매점 계산대 주변에 담배제품을 진열하는 자체만으로도 담배제품에 대한 광고와 판촉효과가 있다”며 “대중의 구매심리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담배업체의 전략으로 담배제품의 충동구매를 조장하고 비 흡연자의 호기심 자극과 함께 금연을 결심한 흡연자들의 의지를 나약하게 만든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WHO가 “담배제품을 다른 일반상품과 함께 진열함으로 흡연이나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행위라는 인식을 심어줘 흡연 위해성에 대한 대중의 올바른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특히 담배 광고 및 판촉효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흡연을 시작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담배광고를 금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복지부 관계자는 “편의점 내 담배 POP 광고들은 건강증진법 흡연자에게 담배 품명ㆍ종류 및 특징을 알리는 정도를 넘지 말아야 하고 비흡연자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흡연을 권장하거나 유도하면 안 된다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4(담배에 관한 광고의 금지 또는 제한)항을 위반한 것으로 보이지만 복지부에 단속권한이 없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기획재정부 소관인 담배사업법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장관은 문제 있는 담배 광고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지만 적극적인 규제에 나서고 있지 않다”며 “이에 복지부는 건강증진법 개정을 통해 과도한 담배광고를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추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법 집행 결여와 함께 사법당국의 안일한 태도도 문제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등은 금연운동 관련 단체들은 “담뱃갑 광고 위반과 관련 검찰에 고발해도 100%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고 있다”며 “담배 POP광고도 결과는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 관계자도 “금연 관련 단체들이 애써 검찰에 고발해도 복지부에 문의 전화 한 통 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법 집행도 안 되고 고발해도 소용이 없다 보니 세상 무서운 것 없이 담배업체들이 편의점에서 담배광고를 무차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은 “담배광고·진열규제 등을 통해 흡연을 통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금연정책이지만 담뱃갑 흡연경고사진 부착도 힘든 현실에서 꿈같은 얘기”라며 “있는 법조차 사문화시킨 정부에게 사실상 바랄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서 회장은 또 “편의점 내 담배 POP광고는 성인흡연자와 과거 흡연자의 흡연 충동을 유발할 뿐 아니라 청소년의 흡연 호기심을 유발한다”며 “정부가 진정 국민건강을 걱정한다면 담배광고는 물론 담배판매와 관련된 법규를 전면적으로 손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2012년 기준으로 KT&G의 연간 매출은 5조9,000억원이고 필립모리스는 1조9,000억원이다. JTL코리아, BAT코리아 등까지 포함하면 국내 담배시장 매출규모는 9조8,000억원에 이른다. 10조원에 이르는 국내 담배시장을 유지ㆍ발전시키려면 편의점 담배 POP광고는 업체들에겐 하나의 홍보수단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시장유지를 위해 난장판을 만든 결과, 국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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