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증가 요인 크게 줄어 간부 임금 동결 가능성 없어
"부채 증가 억제가 아니라 부채 감축이 목표 돼야" 지적
노사 합의가 중간평가 잣대, 정부에 충성경쟁 도구 될 우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노사가 올해부터 금융부채가 늘어나면 부장급 이상의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 임금이 동결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보여주기 식 합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9일 LH는 노사가 임시이사회를 열고, 정부의 공기업 경영정상화 주요 과제인 방만경영 개선 과제 이행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공기업 자산규모 1위 기관의 노사가 부채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LH 노사에 따르면 2급(부장급) 이상 간부사원 800여명은 앞으로 3년간 매년 부채를 줄이지 못하면 임금인상분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과거 평균 임금인상률(2%)로 추정한 1인당 연간 평균 급여 반납금액은 147만원으로, 총 11억7,600만원 수준이다. 또 1인당 복리후생비를 작년 689만원에서 482만원으로 207만원(32%) 삭감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공공기관이 부채감축 자구 노력을 보여준 첫 사례로 꼽힌다. 김양수 LH 기획조정실장은 “정부 대책에 마지못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자발적으로 경영정상화에 나서겠다는 의미”라며 “합의에 이르지 못한 공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LH 간부들의 임금이 깎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LH는 작년 이재영 사장 취임 이후 ‘더 이상 빚을 지지 않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자산 매각,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2017년까지 총 부채를 49조4,000억원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결과 지난달 말 기준 금융부채는 101조9,000억원으로 작년보다 3조8,000억원 줄어든 상태다. 특히 혁신도시 건설 등 LH의 부채를 크게 늘린 사업들이 마무리 단계라 부채 증가 요인 자체도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LH의 경우 부채를 크게 줄이는 게 지상 목표라는 점에서 부채 증가 시 임금 동결이라는 합의가 크게 와 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향후 부채 증가 여부를 따질 게 아니라 현재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임금을 동결하겠다는 식의 합의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얘기다. 합의 유효기간을 현 정부 임기인 2017년까지로 한 것을 두고도 “국민과의 약속이 아닌 정권과의 약속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정부가 노사간 단체협약 타결을 중간평가의 주요 잣대로 제시하면서 공공기관 노사의 ‘합의를 위한 합의’가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재부는 13일 단체협약을 타결한 기관에 대해 1차 중간평가를 실시해 중점관리 기관 지정을 조기 해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달 들어 38개 중점관리 공공기관 중 14곳이 노사 합의를 발표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노사 합의조차 정부에 대한 충성 경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라며 “부채감축이라는 수치보다 공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공공기관 정상화”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