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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월드컵과 이중국적자

입력
2014.06.2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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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미국 팀에는 독일인이 5명이나 뛰고 있다. 모국에서 축구를 배워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싸우는 이중국적 선수들이다. 이중국적자는 아이슬란드인, 노르웨이인까지 합해 7명이다. 미국 축구팬들이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이들에게 화를 내는 건 당연해 보인다. 제3자가 보기에도 미국을 누가 대표하는지 정체성에 혼란이 올 정도다. 독일 출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미국축구의 전설 랜던 도노반을 대표팀에서 탈락시키고 대신 독일인을 기용했으니 축구팬들로선 기가 찰 노릇이다. 아마 미국팀이 16강에서 탈락했더라면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팀의 홍명보 감독의 처지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팀이 조별 예선에서 얻은 4골 중 2골은 독일인들 작품이고, 죽음의 조로 꼽히는 G조에서 16강에 안착하기까지 이중국적 선수들의 활약이 컸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멜팅 팟’인 건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단일 국적자로 구성된 대표팀이 7개국에 불과한 것만 봐도 그렇다. 지금 세계에서 이중국적 선수기용은 애국심이나 정체성의 부족이 아니라 승리를 얻기 위한 전술 그 자체다. 멕시코팀에는 2명의 미국인이 뛰고 있고, 미국을 적으로 여기는 이란팀조차 수비수로 미국인을 뛰도록 허용했다. 세계의 이중국적자 활용을 부러워할 일은 아니지만 이와 대비되는 것은 아직 이들을 죄인 취급하는 한국의 풍토다. 한국에서 이중국적자는 국민정서상 병역기피나, 원정출산 폐해의 결과이기 쉬운 때문이다. 그래서 법 또한 어떤 이중국적자라도 그가 한국에서 일하거나 방문하는 것을 어렵고 까다롭게 만들어놨다.

국적법의 선천적 복수국적 조항은 해외동포 입장에서 볼 때 징벌적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외국에서 출생해도 부모 중 한 사람만 한국 국적이면 자녀는 한국 국적을 선천적으로 갖게 된다. 문제는 200만 재미동포의 경우 대다수가 한국 국적일 때 자녀를 낳게 된다는 점이다. 그 자녀인 2세 대부분은 미국의 속지주의와 한국의 속인주의로 인해 선의의 이중국적자가 될 수밖에 없다. 국적법은 그나마 이중국적 여성은 국적이탈을 하지 않아도 23세 때 한국국적을 자동말소 시켜준다.

하지만 남성은 18세가 되는 해의 3개월 안에 한국국적을 이탈하지 않으면, 38세가 돼 병역의무가 면제되지 않는 한 국적이탈을 할 수 없도록 막았다. 만약 이중국적 남성이 38세가 되기 전 한국에 3개월 이상 체류한다면 병역의무를 마쳐야 한다. 이런 규정은 국민정서, 병역의 형평성에는 가까울지 모르지만 해외동포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너무 먼 게 사실이다. 현지 정착에 바쁜 이민자들이 고국의 법 조항까지 파악하길 기대한다면 지나치다. 미국 워싱턴에서 잘 나가는 전종준 변호사마저 아들의 이중국적 문제를 미리 알지 못해 헌법소원에 매달리는 처지다.

그렇다고 정부가 사전에 고지하는 것도 아니다. 38세까지 한국에 가지 않으면 모든 게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또 그때까지 2세들이 감내할 불이익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에서 군에 입대한 2세들은 한국군에 다시 징집되는 법적 충돌 문제 때문에 주한미군 근무를 꺼린다. 굴지의 로펌에 취직한 2세 젊은 변호사가 이중국적 문제로 한국발령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이런 법 체제에서는 35세가 되면 대통령 피선거권, 계승권이 주어지는 미국에서 2세 출신의 ‘제2의 오바마’도 나오기가 힘들어진다. 또 한국처럼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에서 유리 천장으로 작용, 2세들의 사회진출에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크다. 국내에선 반향이 적지만 해외동포들이 ‘원정출산 잡으려다 해외동포 2세 잡는다’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국적법 개정 서명운동을 펴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몸도 마음도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사람으로 사는 2세들을 선의의 피해자로 만드는 게 법의 형평성에 부합하는지 따져볼 때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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