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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어내고 메우기 반복… 치열한 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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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어내고 메우기 반복… 치열한 땀의 기록

입력
2014.06.2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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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거장' 정상화 화백, 내일부터 갤러리현대 개인전

"그리기 아닌 일하기"…작품에 1년 이상 걸리기 일쑤

갤러리현대의 전시장 작품 앞에 선 정상화 화백. 40여 년 간 단색화 작업을 해온 그는 “단순화해야 본질을 정확히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갤러리현대 제공
갤러리현대의 전시장 작품 앞에 선 정상화 화백. 40여 년 간 단색화 작업을 해온 그는 “단순화해야 본질을 정확히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갤러리현대 제공
정상화 작 ‘무제 012-5-7’. 2012, 캔버스에 아크릴, 130 x 97㎝. 갤러리현대 제공
정상화 작 ‘무제 012-5-7’. 2012, 캔버스에 아크릴, 130 x 97㎝. 갤러리현대 제공

전후 한국미술에서 1970년대를 대표하는 사조는 단색화다. 일체의 구상성을 배제한 단색 추상화를 가리킨다. 대표적인 작가로 지금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우환을 비롯해 권영우, 김창열, 박서보, 윤명로, 정상화, 최명영, 하종현 등이 꼽힌다. 한국의 단색화는 군사독재 시기인 1970년대에 등장했지만 정치적 현실을 철저히 외면했다. 때문에 1980년대 민중미술이 부상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 단색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정상화(82) 화백의 개인전이 7월 1일 개막해 한 달간 서울 사간동의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본격 활동을 시작한 197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45점을 골라 40여 년간의 작품 세계를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전시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고 뜯어내고 메우는 방법으로 작업해왔다. 그의 작품에서 대형 화면 가득 미세한 패턴을 형성하는 격자는 흙이 말라 일으킨 균열이다. 캔버스에 5㎜ 두께로 고령토를 바르고 마르기를 기다려 캔버스를 규칙적인 간격으로 가로, 세로 접는다. 접힌 자국을 따라 금이 간 고령토 조각을 하나씩 떼어내 빈 자리에 아크릴 물감을 얹는다. 그렇게 뜯어내고 메우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작품을 완성한다. 물감을 한꺼번에 바르지 않고 적은 양으로 엷게, 예닐곱 번에서 많으면 열 번 이상 칠해 두터운 질감과 미묘한 색을 얻어낸다. 고령토도 한번에 두껍게 바르는 게 아니고 큰 붓으로 얇게, 여러 번 발라 두께를 얻는다. 바르는 데 1주일 이상, 말리는 데 또 그 이상이 걸린다. 그러다 보니 작품 완성에 6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작업 방식에서 드러나듯 그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완성된 결과보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과정’으로 정의한다. 그에게 작품은 ‘되풀이되는 일상에 대한 기록’이고 작업은 ‘길을 만들어 내기 위한 끝없는 돌파’다. 일상이 그러하듯 격자는 반복을 거듭하지만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같은 흰색이라도 여러 색을 혼합해 사용함으로써 분홍이나 파랑 등 다른 색에 접근하는 여러 층위를 품고 있다. 단색이지만 단색이 아닌 것이다. 단순하고 무심해 보이지만, 그의 작품에는 치열한 고뇌와 노동의 시간이 새겨져 있다.

그는 “그림을 그린다” “미술한다” “작업한다”가 아니라 “일을 한다”고 말한다. 뜯어내기와 메우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노동집약적인 작업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 종일 ‘일을 한다’. 조수를 쓰지도 않는다. 격자들을 하나하나 뜯어내고 메우는 일은 매순간 작가 고유의 결정이기 때문에 남에게 맡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6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도 작업을 계속하다 1년 만에 탈장 증세를 보여 재수술을 했지만 예전과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다.

한국의 단색화는 최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아트 바젤 등 해외 미술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외국의 미술출판사나 화랑이 한국 단색화를 소개하는 등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면서, 단색화는 한국 화랑들이 외국 경매나 아트페어에 갖고 나가는 주력 상품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의 단색화’ 전시를 열면서 본격적인 재조명이 이뤄졌다. 평단은 서양의 모노크롬 회화가 다색화가 아닌 단색화라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것과 달리, 한국의 단색화는 독자적인 정신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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