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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며 닮아버린 근대 한국사

입력
2014.06.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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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는 지난 24일 일부 언론의 선동으로 빚어진 여론 재판의 결과가 '친일'이란 낙인이라고 주장하며 자진 사퇴했다. 그러나 식민 사관에 젖은 기득권 추종 세력이라는 비판으로부터 그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서 열린 '친일망언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 철회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손팻말을 들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뉴시스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는 지난 24일 일부 언론의 선동으로 빚어진 여론 재판의 결과가 '친일'이란 낙인이라고 주장하며 자진 사퇴했다. 그러나 식민 사관에 젖은 기득권 추종 세력이라는 비판으로부터 그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서 열린 '친일망언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 철회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손팻말을 들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뉴시스

민족주의가 구심력인 나라에서 반역자 자리는 없다. 하지만 식민 사관에 친일 낙인은 지나치다. 청산에 맞선다고 부역자는 아니다. 다만 서글픈 건, 욕하면서 닮아버린 오욕의 근대.

“민족문제연구소가 2005년 8월 친일인명사전 수록 인물 3,090명의 명단을 발표했을 때 해당 인사의 가족과, 그가 관련했던 기관들은 일제히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친일 행위가 명백한데도 그들은 한결같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창업주 혹은 창업주 가족이 친일 논란에 휩싸인 언론사는 선정 기준이 불합리하다거나 아니면 친일개념 자체가 불분명하다며 친일명단 공개가 잘못됐다고 공격했다. (…) 일제의 침탈을 받던 식민시대에 동포를 전장으로 내몰고 항일운동가를 잡아들였으며 일본 체제를 찬양하고 그들에 빌붙어 이권을 챙긴 사람이 분명 적지 않은데 어찌된 일인지 친일을 인정하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였다.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을 놓고도 적지 않은 사람이 친일 발언이라고 보았는데 당사자는 “친일이 아니다”고 극구 부인했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 명단을 발표할 때 펄쩍 잡아뗐던 언론들이 이번에는 그를 지원했다. 그가 친일 논란에 휩싸인 것이 교회 강연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신문 칼럼, 예를 들어 ‘나라의 위신을 지켜라’나 ‘수치의 옷을 이제는 벗자’같은 글에서 일본과의 과거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고 했는데 그런 주장들이 쌓여 그의 역사 의식에 의문을 품게 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식민지근대화론에 공감하는 인사들을 중용해 논란이 되고 있는 마당에 총리 후보자까지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으니, 전체 맥락은 차치하고라도 친일 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고도 당사자가 친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2005년에 친일인사 명단을 발표했던 것처럼 이 참에 친일문제를 다시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빠져있던 친일 인사를 찾아내고, 반대로 사실과 달리 친일로 의심받는 사람들의 억울함도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친일을 부인하는 사람들(한국일보 ‘메아리’ㆍ박광희 부국장 겸 문화부장) ☞ 전문 보기

“한국 정치에서 여전히 ‘일본 식민주의’가 프레임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계기는 문창극 총리 지명자가 자진사퇴하기 전까지 공개된 ‘신의 뜻’ 같은 발언들과 그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에서였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남긴 ‘흔적’은 흔적이 아니었다. (…) 일본 식민통치 당시에 유효했던 통치방식을 이후의 정치가 답습했기 때문이다. 지도자 천황에 대한 절대복종을 국민들이 내면화하도록 교육한 일본의 군인칙유(1882년)와 교육칙어(1890년)는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에 국민교육헌장(1968년)에 영향을 미쳤다. (…) 거대한 생명체인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각 개인의 소중한 삶이 한낱 부품으로 동원되는 국가 중심의 문화도 따지고 보면 일본 식민지배 당시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여성을 ‘성 자원’으로 파악하고 ‘수집, 관리’한 것도 국가주의적 사고였는데, 우리는 축구 경기 해설에서도 여전히 사람을 부품으로 여기는 것처럼 ‘투입’ ‘보강’ ‘교체’ 같은 표현을 쓴다. (…) 과거 남과 북이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독재정권 체제를 쌍둥이처럼 유지했던 것도 어쩌면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일본의 정치 체제에서 그 프레임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 ‘최고존엄’을 비판하는 것은 순종적 국민들의 ‘미덕’이 아니라며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까지 닮았으니 말이다.”

-유령의 프레임(경향신문 ‘기자칼럼’ㆍ최민영 미디어기획팀 기자) ☞ 전문 보기

조상ㆍ이웃 모두 공동체다. 시ㆍ공간 중 기준이 뭐냐가 다를 뿐. 허술한 민족보다 같은 시대 약자와 친한 게 옳긴 하지만. 친일과 기득권은 사실상 동의어다. 시공 초월한 기회주의.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실이 전시 성노예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다고, 그(녀)들의 실체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 또한 표상과 개인을 혼동하는 것 역시 문제다. (…) 따라서 사회적 약자를 사유할 때 그 표상 자체보다 종종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유하고자 하는, 대변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망이다. (…) 전후 일본의 좌파 영화감독들은 재일동포와 조선인들을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키고 사회적 약자로서 환기시키는 데 몰두하였다. 그들에게 ‘조선’은 근대 일본 국가가 정상화되기 위해 해결되어야 하는 모순의 집약으로, 약자인 조선인을 대변하는 것은 전범국으로 상처 난 남성-민족-국가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 ‘제국의 위안부’는 또 하나의 진실의 대리자를 자임하는 대신 그것을 그 누구도 자임할 수 없다는 그 불가능성에 집중했다면 위안부 피해자의 표상에 대해, 그리고 가부장적 민족주의에 의해 재단된 식민지 기억에 대해 더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의 표상(한겨레 ‘크리틱’ㆍ황미요조 영화연구자) ☞ 전문 보기

“특권층이나 귀족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 혹은 국가의 룰 자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을 의미하는 기득권은 분명 비난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 문제를 건드리면 벌컥 화를 내며 진영 논리에 빠졌다고, 좌파니 종북이니 하는 딱지를 붙인다. 지난 보름 동안 우리는 문창극 사태를 통해 그런 기득권의 민낯을 똑바로 보았다. 모든 것을 자신들의 프레임 속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며 변명과 발뺌에는 능굴능신(能屈能伸)한 모습이다. 제대로 된 기득권 인식이 필요하다. (…) 모든 기득권이 나쁘다는 진영 논리는 협량하고 자신의 진정성까지 퇴색시킨다. 정당한 기득권에서 이런 비열하고 천박한 기득권 세력을 도려내야 한다. 그게 보수의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며 진보의 희망을 마련하는 바탕이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진영 논리가 아니라 미래의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소통과 협력의 신뢰를 마련할 수 있는 실마리이다. 그런데도 자꾸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이들을 보호하거나 분리해내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결국 껍데기와 쓰레기만 남게 될 것이다.”

-정당한 기득권, 나쁜 기득권(한국일보 ‘토요에세이’ㆍ김경집 인문학자) ☞ 전문 보기

중앙일보의 이기주의가 집요하다. 이 신문의 과녁은 제 식구인 문창극의 낙마가 자사 아닌 저널리즘의 실패란 결론. KBS 사장이 뭘 하다 쫓겨났는지 모른체하는 사람이 언론학자라니.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 동영상 보도를 두고도 ‘악마의 편집’이냐 아니냐 논란이 컸다. 사실 1시간짜리 강연을 3분가량으로 축약했다는 분량의 문제만으로 짜깁기라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악의적인 왜곡이 있었느냐의 문제다. 전체 동영상을 본 후의 의견들도 문 후보자를 옹호해야 하는 입장이냐 아니냐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문창극 구하기’에 나선 쪽에서는 축약본을 ‘악마의 편집’이라고 했다. ‘문창극 밀어내기’에 나선 쪽에서는 ‘엑기스 편집’ ‘족집게 편집’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동영상을 보고도 성향에 따라 평가는 엇갈렸다. 똑같은 동영상을 보고도 이렇게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어떤 증거물보다도 원래 갖고 있던 성향이나 의도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신의 한수’ 대 ‘악마의 편집’(중앙일보 ‘시론’ㆍ강미은 숙명여대 교수) ☞ 전문 보기

“‘사실적으로는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짓일 수 있는 기사가 더 위험할 수 있다.’ 이 말은 1947년 미국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했던 허친스(Hutchins) 위원회 보고서에 나오는 말이다. 맥락을 제시하지 않고 특정 사실만 발췌해 보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지적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중도사퇴하게 만든 KBS의 보도는 아무리 느슨한 잣대를 가지고 평가해도 올바른 보도 태도라고 볼 수 없다. 6월 11일 저녁 종합뉴스시간에 톱기사로 내보낸 문창극 후보자의 과거 교회 강연내용 발췌 보도는 일반적인 저널리즘 원칙에서 볼 때도 상식 이하의 보도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문창극 후보자 관련 보도는 KBS 내부의 게이트키핑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더구나 사장 공백 상태에서 나온 보도라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정치적 독립성 혹은 보도 공정성 문제로 수많은 비판을 받아 온 KBS가 이제는 개혁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의 KBS 보도가 남긴 것(6월 27일자 중앙일보 ‘시론’ㆍ황근 선문대 교수)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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