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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이정현의 도전

입력
2014.06.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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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의 17대 총선은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졌다. 당시 한나라당 간판으로 그것도 광주에서 출마하는 건 풍차를 향해 덤벼드는 돈키호테나 진배 없었다. 그런 무모한 도전을 이정현이 했다. 광주 서구의 유효투표 6만9,438표 가운데 720표, 1.03%를 얻었다. 여의도 천막당사 시절의 한나라당은 당선 가능성이 전무한 그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당에 연줄 하나 없었던 이정현은 그러나 이 선거를 계기로 든든한 정치적 자산을 얻게 된다.

▦ 천막당사 배수진을 치고 17대 총선에서 가까스로 당을 구한 박근혜 대표는 이정현을 당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했다. 박 대표가 선거 때 한번 가보마 하는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다며 점심을 사는 자리에서 그는‘한나라당의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달라’고 호소했다. 박 대표는 수첩을 꺼내 그 호소를 적었다. 이정현의 수석부대변인 발탁은 일종의 ‘수첩 인사’였던 셈. 그렇게 이정현은 박근혜의 입이 되었다.

▦ 2007년 대선후보 당내 경선 때 박근혜 후보진영의 대변인을 맡았던 이정현은 경선 패배 후에도 박근혜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이명박 정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박근혜의 ‘대변인격’을 거쳐 지금 청와대의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박근혜 속마음의 충실한 전달자였다. 박근혜 빼고 그의 시선이 향한 유일한 곳은 호남이었다. 18대 국회 비례대표의원 시절에는 자타가 인정하는‘호남예산 지킴이’로 활약했다.

▦ 그가 7ㆍ30 재보선에서 전남 순천ㆍ곡성에 출사표를 던졌다. 1995년 광주시의원과 2012년 총선 광주서을 출마를 포함해 네 번째 호남 도전이다. 2012년 총선에선 39.7%를 얻었지만 벽은 여전히 높다. 곡성 산골짜기 출신인 그가 인구가 10배 가량 많은 순천 출신 후보와 싸우게 되면 한층 불리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그가 다시 도전하며 내건 명분은 “4반세기 동안 잃어버린 호남에서의 새누리당 정치경쟁력 회복”. 영호남 화합을 상징하는 섬진강 가에서 소년시절 꿈을 키운 그의 불굴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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