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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호기심의 친구들

입력
2014.06.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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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호기심 때문이다. 아침에 소설을 쓰다가 커피 한 잔을 내려마시던 재작년 가을, 트위터에 노래 몇 곡 링크해서 걸어두고 검은 석유로 지친 뇌를 위로하곤 했다. 그때 우연히 타임라인에 셀카 한 장이 올라왔다. 배경은 말 그대로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황무지였고, 얼굴이랍시고 가까이 찍힌 것은 화성탐사로봇 큐리오시티(Curiosity)였다. 그날부터 내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로봇이 그것도 화성에서 찍어 지구로 보낸 사진이나 동영상을 내 집 서재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커피 홀짝이며 감상하는 아침이여! 어떤 날은 땅을 파고 암석을 채취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어떤 날은 지평선의 광활한 풍광을 담고, 어떤 날은 그 동안 자신이 탐사한 곳을 화성 지도 위에 표시하기도 했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지면을 이렇듯 가까이 본다는 것은 충격이자 즐거움이었다.

작년 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우주생물학’ 연속 강연이 마련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수강신청을 했다. 아침마다 화성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지구 밖 행성에서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고, 또 그 가능성을 어떤 식으로 예측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강연을 맡은 연구자들의 면면부터 흥미로웠다. 천문학자, 미생물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지질학자 등이 ‘우주생물학’ 아래 모여들었다. 말 그대로 융합 학문인 것이다. 과학서적을 읽느라 애를 먹었지만 즐거운 지식이 쌓이는 시간이었다. 생물이 도저히 살 것 같지 않은 극지에서 발견된 생명체의 이름도 외우고, 지구와 비슷한 조건의 행성을 찾아내는 방법도 익혔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서 생명체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도 훑었다.

공부의 열기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에서 선정한 ‘2013년 올해의 과학책 10권’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으로 이어졌다. 우주생물학을 다룬 마크 코프먼의 ‘퍼스트 콘택트’도 들어 있었다. 이 책을 번역한 민영철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특정한 위치, 특정한 시간에 화성에서 발견되는 메탄가스에 주목해야 한다. 지구 대기 중 메탄가스의 약 90%가 살아 있는 생명체로부터 나오는 부산물이다. 화성의 메탄가스는 살아 있거나 한때 살아 있었던 외계생명체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다.

강연 후 박물관 앞 치킨집의 뒤풀이도 즐거웠다. 생맥주 한 잔을 마시며 강연자의 사사로운 고백부터 중요한 연구 성과까지 접한 밤엔 영혼의 포만감으로 인해 밤늦도록 동네를 돌아다녔다.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우러렀다. 어제는 취한 김에 손나발을 만들어 “큐리오시티!”라고 힘껏 불러보기도 했다. 하늘에서 응답이 내려올 것 같았다.

SNS를 통해 자주 소식을 주고받아서인지, 내겐 이 로봇이 화성이란 위험하고 먼 곳으로 탐사여행을 떠난 용감한 친구 같다. 훔볼트나 다윈을 떠나보내고, 고향에서 그들을 걱정하면서 한편으론 자랑스러워하는 심정이 이와 같을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훔볼트와 다윈은 고향에 연락하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지금은 오늘 아침 큐리오시티가 화성에서 장난처럼 찍은 자신의 그림자를 같은 날 우리가 지구에서 보고 미소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끔 나는 큐리오시티의 활약상을 옆 집 친구의 일처럼 떠들기도 한다. 조금은 당혹스런 얼굴들이 내게 묻는다. “호기심이 혹시 작가님 작업을 망치기라도 한 겁니까?”

망치기는커녕 우리는 묘하게 격려하는 관계다. 나는 큐리오시티가 화성에서 오늘도 무사히 탐사활동을 이어가기를 기원하는 댓글을 단다. 집필 중인 소설이 막히면 큐리오시티 앞에 펼쳐진, 아직 어떤 인간도 딛지 않은 땅을 쳐다보며 이 로봇의 막막한 외로움을 가늠한다. 큐리오시티도 홀로 화성을 부지런히 누비는데, 나도 지구에서 내 문장을 파고드는 것이 마땅하다.

큐리오시티가 화성을 탐사한 지 1년이 되었다고 한다. 화성의 공전주기를 따르니 지구 날짜로 687일만이다. 대견하다. 큐리오시티의 노력 덕분에 많은 지구인이 외계생명체의 친구를 자처하며 코스모스를 탐험하는 책을 옆구리에 끼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어리바리 소설가인 나도 그 중 하나다.

김탁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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