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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청년은 왜 방아쇠를 당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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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청년은 왜 방아쇠를 당겼을까

입력
2014.06.2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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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를 뒤흔든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 / 헨리크 레르 글 그림ㆍ오숙은 옮김 / 문학동네 발행ㆍ232쪽ㆍ1만9,800원
세기를 뒤흔든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 / 헨리크 레르 글 그림ㆍ오숙은 옮김 / 문학동네 발행ㆍ232쪽ㆍ1만9,800원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저격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 청년

무정부주의자서 테러리스트로 변하가는 과정 꼼꼼히 되짚어

오늘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는 무더위와 알 수 없는 공기에 휩싸여 있었다. 모든 것이 이뤄지고 또 모든 것이 그르쳐질 것 같은 불안한 공기. 보스니아를 방문 중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사라예보 일정을 취소하고 싶었다. 제국의 통치를 반대하는 급진주의자들의 온상이기도 했지만 제복을 갖춰 입은 채 종일 땀을 흘리며 도시를 누비는 것이 마뜩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들의 충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간언에 따라 그는 황태자비 조피와 함께 차에 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탄이 터졌다. 조피의 양산에 튕겨나가 근처로 떨어진 폭탄 덕에 황태자 부부는 목숨을 건졌고 차는 원래 동선을 포기한 채 부상자들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기사의 실수로 잘못 들어선 사라예보의 한 골목에 그가 있었다. 19세의 가브릴로 프린치프.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인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아래 놓인 조국의 현실에 치를 떨던 민족주의자였다. 앞서 친구와 모의한 폭탄테러가 실패로 돌아간 것에 상심한 그는 빵집에서 빵을 사서 나오다가 황태자 부부의 차가 코 앞에 멈춘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총을 빼 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첫 불꽃이 튀는 순간이었다.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삶을 그린 그래픽 노블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출간됐다. 덴마크 만화가 헨리크 레르가 그 동안 사라예보의 총성 뒤에 가려져 거의 알려진 바가 없던 청년 가브릴로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무엇이 한 청년으로 하여금 이토록 자살 행위에 가까운 일을 저지르게 했는지 궁금해졌다”는 작가의 말대로 책은 평범한 청년 가브릴로가 무정부주의자에서 다시 테러리스트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고 설득력 있게 따라간다. 철없는 시절 술에 취해 친구들과 강에 뛰어들던 그가 “피를 흘리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란 없다”며 테러단 멤버를 다그치는 모습은, 영웅도 악마도 아닌 순진한 청년 가브릴로를 독자의 가슴에 새긴다.

운명의 그날 이후 가브릴로는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 갇혀 4년 후 결핵으로 사망한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대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간수에게 그가 대답한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지 못해요. 전쟁은 어차피 일어났을 겁니다. 나는…방아쇠를 당겼을 뿐이에요.”

헨리크 레르의 음울한 필치는 책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점령당한 덴마크’ ‘화요일’ 등 역사만화를 주로 그려온 작가는 섬세한 펜 터치와 치밀한 고증으로 동구권을 지배했던 어두운 분위기와 당시의 의상, 짓눌린 세르비아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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