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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서 나고 자란 일본인 여성의 삶 통해 그들에 대한 이해 깊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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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서 나고 자란 일본인 여성의 삶 통해 그들에 대한 이해 깊어져

입력
2014.06.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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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스기야마 토미> 혼마 지카케 기록·신호 번역

20대 초반 보충역(방위)으로 고향 육군 사단의 민심처에서 근무했다. 민사(民事)ㆍ심리(心理)를 줄여 만든 이 부서는 이름 대로 군의 대민 업무, 이를테면 재해가 났을 때 구조ㆍ복구 활동을 한다든지 농번기에 농사일을 돕는다든지 하는 일과 심리전을 위한 장병 정신교육을 전담하는 곳이었다.

업무의 본령은 아니었지만 부서별로 사단에서 해야 할 온갖 일들을 나눠 맡다 보니 부대 내 신문 배달 업무가 민심처의 일이었다. 신문배달원이 매일 군부대로 들어와 사단사령부의 각 부처와 직할 부대 행정실까지 훑고 다니게 놔둘 건 아니니까, 방위병들이 아침 출근길에 조간을, 오후에는 외출증을 끊어 석간 지역신문 뭉치를 가지러 잠깐 나갔다 왔다. ‘신문 타러 간다’고 했던 그 일을 다른 방위병들과 번갈아 가며 했다.

보충역으로 군생활을 하면서 평생 다시 겪지 못할 이런저런 경험들을 했지만 기억에 남는 일은 별로 없다. 거의 유일하게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에피소드는 어느 날 신문 타러 갔다가 만난 50대 아저씨와 나눈 짧은 대화다. 신문 뭉치는 단단하게 묶지 않으면 들고 가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런데 마침 그날 신문뭉치가 어쩐 일인지 허술하게 묶여져 있었다. 그런 일이 흔치 않기 때문에 미처 끈을 준비하지 못한 내가 딱해 보였던지 아저씨가 어디서 끈을 가져와 손수 묶어 주시면서, 또 이런 신문뭉치는 매듭을 모서리에서 지어야 단단하다고 방법까지 가르쳐 주시며 한 마디를 보탠다. “나이 들면 이런 요령은 좀 는다우.”

다시 읽고 싶은 책으로 ‘스기야마 토미’라는 구술 자서전을 소개하려고 하면서 이 에피소드를 다시 떠올렸다. 그 아저씨의 겸손이 다양한 경험의 산물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나이 들면”이라는 그의 말에서 그런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경험이 사람을 더욱 원숙하게 만들고 또 지혜롭게(똑똑하다는 것과는 다른) 한다는 것을 그의 그 한 마디 말에서 순간 실감했다. 그 뒤로 아이가 생긴 뒤 눈물이 많아지고, 해외생활을 하며 시야가 넓어졌다고 느끼면서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 책은 박현수 영남대 명예교수가 주도한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이 생활사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눈빛출판사를 통해 내놓은 ‘한국민중구술열전’ 시리즈의 하나다. 2011년 책이 나올 때는 원래 계획했던 민중 구술 작업이 끝나고 3년이 지난 뒤였다. 계획 외 작업이었다는 것 보다 더 특이한 것은 이 구술의 주인공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기야마 토미는 ‘식민지’ 조선을 체험한 일본 여성이다. 1921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대구서 여고를 마치고 서울의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다시 대구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서는 점령지에서 살다 전후 귀국한 이런 사람들을 ‘히키아게샤(引揚者)’라고 부른다. 그렇게 이름을 붙여 은근히 차별하는 문화도 있다.

구술 내용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옮겨와 살던 일본인들이 어떤 생활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스기야마는 “일본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공간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라는 자각이 있었나”는 질문에 놀랍게도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그가 살던 대구 중심가는 거의 일본인뿐이었고, 성장하면서도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이른바 내선일체 교육 일색이어서 그냥 ‘일본’이라는 느낌으로 살았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 제자들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무사히 일본에 간 스기야마는 귀국 당시 학생에게서 받은 편지에서 조선 독립을 기뻐한다는 내용을 볼 때까지 조선 사람들이 독립을 간절히 바랐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때 비로소 전쟁에 동조하여 한국 아이들을 무리하게 일본인으로 만들려고 한 과오가 가슴에 사무쳐 그는 일본에서 교직을 포기했다. 주변의 설득으로 다시 장애인 교육에 나서고 한일 친선 사업에도 참여한 것은 한참 지나서 일이다.

한반도에서 태어나 자란 경험을 통해 그는 애초 일본에서 나서 일본인으로 살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소중한 것들을 얻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삶을 이 책을 통해 보면서 ‘일본’과 ‘일본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더 풍부해졌다고 느꼈다. 이런 경험과 이해가 많아진다면 한일관계도 언젠가 좋아지리라고 믿는다.

김범수 국제부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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