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이 다뤄야 할 것은 그래프가 아니라 사람이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이 문구가 될 것 같다. 마드리드의 한 대학 캠퍼스 벽에 새겨진 구호라고 하는데 금융기관들이 세계 경제정책에 행사하는 부당한 영향력에 반대하는 저항을 담은 메시지다.
이 책 역시 수요와 공급 곡선에 갇힌 주류 경제학에 반기를 든다. 일종의 ‘대안 경제학 교과서’다. 각국의 ‘삐딱한’ 경제학자들이 총출동했다. 파리 8대학 경제학과 조교수로 ‘탈자폐 경제학 운동’(paecon.net)을 시작한 질 라보, 환경단체 ‘지구경제학’의 수석 경제 자문인 데이비드 뱃커, 영국의 재야 생태 경제학자인 브라이언 데이비, 칠레의 경제학자이자 환경주의자인 만프레드 막스네프, 미국 코넬대에서 ‘젠더와 경제발전’을 가르치는 루르데스 베네리아 등이 등장한다. 생명 경제학, 심리 경제학, 여성주의 경제학, 행동 경제학 등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전복을 꿈꾸는 학계의 이단아들이다.
이들을 모아 놓고 깃발을 든 이는 칼레 라슨.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처음 제안한 인물이다. 유명 상업 광고를 비틀어 패러디하는 비영리 격월간지인 ‘광고파괴자’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이기도 하다.
이 책이 던지는 근본 질문은 ‘그래서 사람은, 지구는, 우리의 삶은?’이다. 이를테면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 전염병인 정신 질환의 경제적 비용은 얼마인가” “석유, 물고기, 숲, 광물 같은 지구의 자연 자본을 팔아 치우면서 이것을 소득이라 부를 수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금융과 은행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같은 물음들이다.
‘시장 신봉자’인 맨큐를 향해서는 “이 시대 최고의 선동가”라고 꼬집는다. 맨큐는 완전경쟁이 ‘사회적 최적화’를 가져오며 실업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실업 수당, 노동조합, 최저 임금제와 같은 국가의 인도적 개입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과연 노동시장을 일반시장으로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도발적인 화두를 맞닥뜨리며 독자는 신자유주의에 치우쳐 다양성을 상실한 ‘자폐 학문’으로 전락해버린 주류 경제학의 민낯을 볼 수 있다. 프랑스 파리, 영국의 케임브리지, 미국의 하버드 등에서 이미 시작된 경제학도들의 반란도 소개돼있다.
제목에 쓰인 ‘문화 유전자’는 리처드 도킨스가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쓴 단어다. 유전적인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 습득되는 문화요소를 뜻한다. 책 제목은 결국 주류 경제학이 만든 문화 유전자와 한판 전쟁을 하자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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