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 사망 시 손주에 보험금 지급
조손가정 늘면서 관련 상품 조용한 인기
60대 주부 A씨는 요즘 손자(7) 앞으로 매달 4만원씩 꼬박꼬박 보험을 든다. 차곡차곡 쌓인 보험금은 A씨가 사망한 뒤 10년간 매년 손자 생일에 100만원씩 손자에게 지급된다. A씨가 미리 자필로 써둔 생일 축하카드도 발송된다. A씨는 지난 6년간 맞벌이 부부인 딸을 대신해 매일 아침부터 딸 내외가 퇴근하는 저녁까지 손자를 돌봤다. 손자를 돌보느라 허리, 무릎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만, 애교 많은 손자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오히려 생활은 활기가 넘쳤다. 그러다 올 초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A씨는 육아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해방감도 잠시. A씨는 곧 상실감에 빠졌다. 할머니 품에서 떠날 줄을 몰랐던 손자는 이제 또래 아이들이나 부모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A씨는 “아프거나 배고프면 나한테 와서 칭얼대던 아이가 이제 부모만 찾더라”라며 “손자 생일 때마다 용돈이라도 주면 나를 좀더 오래 기억해주지 않을까”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맞벌이 자녀 대신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겨냥한 보험상품까지 등장했다. 조부모 사망 이후 손주들에게 보험금을 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노후에 힘들게 손주를 돌보는 것도 모자라 사망 이후에 보험금까지 챙겨줘야 하느냐며 상술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지만 의외로 시장반응은 좋다.
국내에는 지난해 5월 교보생명이 ‘교보 손주사랑보험’을 내놓으면서 처음 소개됐다. 이 상품은 매달 3~5만원의 보험료를 내면 조부모 사망 뒤 손주 앞으로 10년간 매년 100만원씩 손주 생일이나 지정한 기념일에 지급된다. 출시 이후 1년간 2만5,000여명이 가입했다. 올해 5월 NH농협생명도 ‘내리사랑 NH종신보험’을 선보였고, 삼성생명도 연금의 일부를 손주에게 주는 ‘내리사랑 연금보험’을 출시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기존 보험상품이 재테크와 노후보장 위주였다면 손주보험은 가족간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이벤트상품이다”라며 “보험료가 낮고 손주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50~60대 조부모가 많아 수요가 꽤 높다”고 말했다.
보험이 인기 있는 이유는 과거보다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조손 가정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 조손 가족 가수 수는 2만3,344가구. 2000년 5,224가구에 불과했던 조손 가구가 10여년만에 4배 이상 크게 늘어났다. 서울시는 10년 후인 2023년쯤에는 현재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4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황혼 육아가 늘면서 손주에 대한 애틋함도 커졌다. 상품개발 전 심층면접에서 50~70대 조부모 대다수는 ‘손주들이 날 오래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보험을 들고 싶어한 것으로 나타났다. 손주보험에 가입한 이모(57)씨는 “자식이야 오랜 세월 같이 보내지만 손주와 보내는 시간은 짧아 그만큼 애틋한 것 같다”고 했다. 아들이 이혼하면서 홀로 손녀를 키운 김모(72)씨도 “자식처럼 키운 손녀가 혹시라도 외롭거나 힘들어질까 걱정된다”며 “목돈을 주는 것보다 소액이라도 매년 꾸준히 주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보험을 들었다.
보험료가 비교적 저렴하고 계약자와 피보험자 설정에 제약이 없다는 점도 가입문턱을 낮췄다. 아들 내외와 손녀(15)와 함께 사는 60대 여성은 며느리와 손녀 앞으로 각각 손주보험을 들었다. 피보험자로 손주뿐 아니라 자녀도 설정 가능하다. 그는 “며느리한테는 작게나마 제사비용을 보태주고 싶고, 손녀한테는 매년 새 학기 때마다 용돈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자녀로부터 생활비를 받아서 일부를 손주보험에 가입해주는 조부모도 있다.
하지만 기존에 사망을 보장하는 종신보험을 조부모의 감성을 이용해 판매하려는 상술이라는 시선도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이기욱 보험국장은 “보험시장이 포화상태 이다 보니 이름만 바꿔서 신상품인 것처럼 내놓는 상품들이 많다”며 “이벤트 상품일수록 수명이 짧고, 보험 해약률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처음 가입할 때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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