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은행은 올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구매력 평가(PPP) 기준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매력 평가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국가별 물가차이와 환율을 고려해 조정한 GDP를 말한다. 달러 기준 GDP 순위는 미국이 여전히 1위이지만, 중국이 지난해 교역규모 1위에 등극한데 이어 구매력평가기준 GDP 순위에서도 1위로 거론되자 세계는 또 한 번 놀라는 분위기다.
과거 중국은 폭발적인 경제성장으로 인해 종착역 모르는 폭주기관차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감속 모드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기존의 양적인 성장을 질적인 성장으로 전환하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정부는 과거와 같은 고속 경제성장 기조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 강도 높은 개혁을 통해 안정적인 질적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를 위한 핵심 정책은 산업 구조조정과 내수 활성화이다. 산업 구조조정은 양적 성장정책에서 발생한 심각한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다. 내수 활성화를 위한 처방전은 신도시화다. 기존 도시면적을 확장하는 공간의 도시화 개념이 아닌 호구제 개혁을 통한 사람의 도시화가 본질적인 명제다. 이를 통해 과도한 소득격차를 해소하고 새로운 소비수요를 창출하고자 한다. 이렇게 불균형을 바로잡는 ‘리밸런싱(rebalancing)’은 중국경제의 향방을 읽는 핵심 키워드다.
또 하나의 G2 국가인 미국은 요즘 ‘리쇼어링(Reshoring)’이 화두다.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로 침체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고자 선택한 묘책이다.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부활에 앞장선 미국 제조업체들은 하나둘씩 본국으로 귀환하고 있다. 양적완화 정책과 파격적인 지원책, 그리고 값싼 셰일가스의 힘은 제조업 부흥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애플은 1억달러를 투자해 중국 내 매킨토시 PC 생산 라인을 미국으로 이전키로 했고, 제너럴일렉트릭(GE)은 가전생산 부문을 중국에서 켄터키 공장으로 둥지를 옮기면서 총 8억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미국의 리쇼어링과 중국의 리밸런싱은 글로벌 경제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대형 변수다. 소비대국 미국이 제조대국이 되고, 제조대국 중국이 소비대국으로 바뀌는 ‘역할 체인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 제조업의 부활은 우리에게도 호재다. 일자리가 늘고 경기가 회복되면 미국에 대한 소비재 및 자본재 수출이 증가하고,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한 우회 수출도 늘어날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 중국 수출비중이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부가가치 기준으로 집계하면 중국보다 미국에 대한 수출비중이 더 높다. 미국이 여전히 우리에게 핵심적인 시장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혁과 구조조정을 축으로 하는 중국의 리밸런싱은 경제성장에 단기적인 충격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자극을 덜 주고 분배를 강조하면 덜 성장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중국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나라다. 장기적으로 보고 판단한다. 7% 중반대의 성장률 둔화는 중국 정부가 목표로 하는 서비스·내수 중심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 따르는 성장통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고통을 거치고 나면 중국은 더욱 개방적이고 시장지향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미중 경제가 씨줄(리쇼어링)과 날줄(리밸런싱)로 바둑판처럼 복잡하게 얽히면서 세계 각국은 치열한 수읽기에 들어갔다. 리쇼어링과 리밸런싱의 교차 방정식을 푸는 신의 훈수는 한 발 빠른 준비와 대응을 일컫는 ‘피드-포워드(feed-forward)’ 전략이다. 우리 기업들로서는 글로벌 밸류 체인과 제조업 지형도에 앞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인지 미리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영호 코트라(KOTRA)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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