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핸드폰이 울려 화면을 보니 작년에 책을 낸 출판사의 전화다. 전화를 받기까지 몇 초에 불과했지만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잘 팔릴 거라고 우겨서 책을 내긴 했는데 도무지 팔리지 않아 미안했는데 웬일이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면서도 혹 재판 찍으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없지 않았다. 10년 가뭄에도 비는 온다고 했고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등등 내 유리한 쪽으로 상상했지만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평온을 유지한 목소리로 무심한 듯 전화를 받았다.
출판사에서는 의례적 인사말을 몇 마디 묻더니 본론을 말했다. 도서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줄 수 있는지 의사를 물으며 ‘재능기부’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강의를 하면 재능기부 형태이니 무료이고, 대신 도서관에서 강의하는 해당 책을 30만 원가량 구입해준다는 것이다. 이번 일은 도서 납품업체가 어떠한 대가나 비용 없이 소개해준 것이고 진행 일체는 도서관 측에서 맡는다고 덧붙였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책과 저자를 소개하는 게 목적이고, 즉각적인 판매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강의 또는 이벤트를 통해 저자와 책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 듣고 나니 왠지 먹먹하고 말문이 막혀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재능기부란 기업이나 단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사회에 기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부로서 요즘에는 개인도 동참하고 있고 이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전시키는 데에 의미가 있는 고귀한 행위임을 잘 알고 있다. 개인이 재능을 기부할 경우 가장 먼저 필요한 전제조건은 본인의 자발적인 의사결정과 의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재능기부를 ‘제의’받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출판사나 행사를 주최하는 도서관의 의도는 알겠지만, 재능기부라는 말의 본래의 의미가 변질되어 ‘대가가 없는’이라는 말을 에둘러서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강의를 거부하면 재능기부라는 공익적 행위를 거부하는 인간이 되기에 거절하기 쉽지 않다. 뿐인가. 대형 출판사들도 휘청거리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허덕이는 작은 출판사를 돕지 않는 이기적 저자가 되고 말 것이다. 출판사에 팔리지 않는 책에 대한 미안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인문학 전공 저자이기에 더욱 마음이 편치 않을 수밖에 없다. “노니 장독 깬다.”는 말도 있고, “비 온다고 공칠 수 없다.”고도 하니 한 권이라도 파는데 일조할까 했지만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인문학을 전공한다는 핑계로 제 좋아하는 분야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 보니 하는 것 없이 나이를 먹어 당장 죽어도 요절은커녕 그리 동정도 못 받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그놈의 알량한 자존심은 남아 있다. 인문학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라는 생각은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다. 흰머리는 늘어나고 노안에 오십견이 왔지만 이젠 전업하기도 늦어 억지로 힘주어 붙들고 있는 것이 붓 대롱이다. 그러나 아직은 나를 가볍게 움직이거나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매주 쏟아져 나오는 숱한 책 가운데 주목 한 번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좋은 책들의 비참한 운명을 생각하면 안쓰러움이 앞선다. 주목받지 못한 저자를 제대로 알리고 사라질 위험에 빠진 양서를 구한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그램은 의미가 크다. 침체 일로에 있는 도서시장의 파이를 늘린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런 독서 관계 행사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꾸준히 지속되는 사업이 되어 메마른 우리 사회에 인문학에의 관심을 넓히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아무리 대의가 훌륭하고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고 해도 이른바 ‘글쟁이’들, ‘책상물림’들, ‘먹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와 존중이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부패를 늦추는 억균제 역할을 하는 이들이니 말이다. 아직도 발을 땅에 대지 못하는 걸 보니 나는 배가 더 고파야 되나 보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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