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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국 민주주의, 후진중?

입력
2014.06.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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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 모레면 6월 29일, 민주화를 이룬지 27년 되는 날이다. 1960년대 초부터 이어져온 철권통치의 국가권력을 시민항쟁으로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개막했으니 참으로 뜻 깊은 날이라 할 것이다. 헌데, 우리 민주주의의 현재 모습을 보면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되는 사회의 원리를 뜻한다. 헌법 1조에서도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1970~80년대 독재시절 헌법과 달리 체육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제왕처럼 국민 위에 군림했던 때가 있었다. 국민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건 1987년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다. 국민이 선거정치에 참여해 주인 행세하는 시기는 민주주의가 화려하게 꽃 피우는 듯하지만, 그 다음에는 오늘의 권력자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돼 무시되거나 노예처럼 취급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당장 지난 정권은 임기 동안 국민의 인권 및 노동권, 언론 자유를 크게 훼손해 나라 안팎으로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다. 심지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핵심 권력기관이 번연히 선거에 개입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을 저질렀다. 이처럼 아직도 옛 독재의 유령이 출몰하고 있으니 우리 민주주의가 얼마나 튼실치 못한지 깨닫게 된다.

근원적으로는 날로 심각해지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4 한국 경제보고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의 비중이 크게 줄고 정규직-비정규직의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해 소득 불평등과 상대적 빈곤이 위험수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불평등이 심각해지면 빈부격차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치, 경제에서 권력의 비대칭 문제로 비화한다. 프랑스 사회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1755년에 출간한 저서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굶주린 다수에게는 필요한 것이 모자라는데 소수의 사람에게 사치품이 넘쳐나는 것은, 자연법을 어떻게 규정하든, 명백히 자연법에 위배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자연법은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삶을 지칭한다. 루소는 이어 부자와 빈자의 인간관계가 곧 강자와 약자로 변질되고, 급기야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이르게 돼 “아이가 어른에게 명령하고 바보가 총명한 사람을 통솔하는 어둠의 시대”에 들어간다고 경고한다. 최근 뜨거운 이슈가 됐던 갑을관계가 이런 게 아닐까 생각된다. 민주화 이전의 개발독재 시대에는 부패한 소수권력자만이 부를 누렸으나 이제는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정계 인물과 권력기관 사람들에 더해 시장권력을 쥔 재벌 대기업들이 온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이등시민이라 불리는 비정규직이나 영세업체 종사자와 자영업자들, 그리고 취업난의 청년과 고령 은퇴자들 모두에게 민주주의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기 십상이다. 민주주의를 손상시키는 불평등이 심화하는 계기가 지난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펼쳐진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이니, 이를 신조 삼아 기업 살리기에 열중해온 작금의 보수정권이나 시장과 민주를 병행, 발전시킨다며 국민 참여를 외치던 민주정부 모두 면책하기 어려울 듯하다.

이솝 우화에 이런 옛 얘기가 전해진다. “난폭하지 않고 온순하고 올바른 사자가 동물 나라의 왕이 됐다. 사자가 통치하는 동안 늑대와 양, 표범과 영양, 호랑이와 사슴, 개와 토끼는 설고 화해하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다. 토끼가 말했다. ‘나는 허약한 동물들이 난폭한 동물들에게 두려워 보이는 이 날이 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국민이 바라는 세상이 이런 게 아닐까? 어느 누가 대통령이 돼도 정의롭게 모든 국민에게 높낮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들을 주인으로 받드는 참된 민주사회를 이루는 것일테니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개조론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이제 온전히 민주화를 구현하는 사회개조가 제대로 시작되기를 바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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