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前 '고사: 피의 중간고사'가 100만명 넘긴 마지막 귀신영화
"신선한 소재의 시나리오 드물어" 배급사·감독들 작품 제작 외면
내달 3일 개봉 앞둔 '소녀괴담' 관객 선택 받을 수 있을지 주목
극장가에서 귀신이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여름이면 청순한 생머리에 백옥 같은 피부를 자랑하며 선혈이 낭자한 복수극을 펼쳐 보이던 귀신이 영화계에서 퇴출 위기에 놓인 것이다. 한여름 극장가에서 감초 역할을 했던 한국형 공포영화, 다시 말해 귀신영화는 사실상 씨가 말라가고 있다. 최근 당신이 극장에서 몹시 무서운 귀신을 봤다면 그건 외국영화 속 귀신이었거나 아니면 극장에 있는 진짜 귀신이었을 것이다.
한국 귀신이 어쩌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걸까. 관객들이 한국 공포영화를 외면하고 있는 현상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2010년 이후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영화 중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건 지난해 여름 개봉한 ‘더 웹툰: 예고살인’ 단 한 편뿐이다. 그러나 귀신이 공포의 핵심인 영화가 아니었고, 관객의 좋은 평가에도 최종 관객수는 120만명에 그쳤다.
최근 귀신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저조하다.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2010년ㆍ87만명),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2011년ㆍ79만명), ‘미확인 동영상: 절대클릭금지’(2012년ㆍ86만명)가 그나마 성공한 축에 속한다. 장르 특성상 80만명 안팎이 손익분기점이라서 겨우 적자를 면한 수준이다. 귀신영화로 100만명을 넘긴 건 2008년 ‘고사: 피의 중간고사’가 마지막이었다.
극장가에서 귀신영화가 아예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긴 힘들다. 지난 연말 개봉한 미국영화 ‘컨저링’은 스타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닌데 226만명을 모아 ‘장화, 홍련’(2003년ㆍ314만명) 이후 가장 성공한 귀신영화의 자리에 올랐다.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 관계자들은 귀신영화의 퇴조에 대해 “사람이 귀신보다 무서운 세상이니까”라고 거의 한 목소리로 말한다. 지난해 한국영화 중 가장 무섭다는 평을 들었던 건 ‘숨바꼭질’(560만명)이었는데 공포의 대상은 원혼이 아닌 아파트에 몰래 침입한 사람이었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작은 영화’ ‘저예산 영화’로 오인되는 걸 우려한 배급사의 방침에 따라 스릴러 장르로 분류됐다. 8월 개봉 예정인 3D 공포영화 ‘터널’을 제작한 한만택 필마픽처스 대표는 “사다코(일본 영화 ‘링’에 나오는 귀신 이름)처럼 어두운 곳에서 스멀스멀 나온 귀신이 복수하는 내용은 이제 관객들이 뻔하다고 생각한다”며 “생활 밀착형의 실제적이고 관계성 있는 것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 투자ㆍ배급사에 배달된 수많은 시나리오 가운데서도 귀신영화는 많지 않다.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누구도 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투자ㆍ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공포영화 특성상 작은 예산으로 여름 시즌에 많아야 한 편 정도 내놓는 게 보통이라 다른 장르보다 시나리오 수가 적은 것이 현실”이라며 “전체 시나리오 중 귀신이 나오는 공포 장르는 100~200편에 하나쯤이고 그 중에서도 신선한 소재의 시나리오는 더욱 드물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한국 영화산업에서 귀신이 완전히 멸종한 건 아니다. 공포 영화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일부 제작사들이 끊길 듯 말듯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 창립 작품으로 ‘두 개의 달’을 내놓고 7월 3일 두 번째 공포영화 ‘소녀괴담’을 개봉하는 고스트 픽처스가 그 중 하나다. ‘분신사바’ ‘이프’ 등을 쓴 인기 공포 작가 이종호씨가 차린 영화사다. 그는 “한국 관객들은 공포 요소와 드라마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며 “공포에 함몰되지 않고 오락적인 요소를 버무려 외연을 넓히는 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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