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나 과실로 다수의 사상자를 낸 중범죄자에게 최고 100년 형을 처할 수 있도록 한 ‘다중인명피해범죄의 경합범 가중에 관한 특례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승객들을 방치한 채 도주한 세월호 선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만들어진 법안이다. 하지만 형법의 근간을 흔드는 내용인데다 사회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졸속 입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특례법은 ‘행위에 따른 처벌’을 원칙으로 한 기존 형법체계와 달리 ‘결과에 따른 처벌’에 주안점을 둔다. 현행 형법은 하나의 행위라면 하나의 범죄로 보지만 특례법은 하나의 행위라도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면 피해자 수만큼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한다. 버스 사고로 승객 20명이 사망한 경우 지금은 업무상 과실치사죄(5년 이하의 금고)에다 중범죄자에 적용되는 1.5배 가중처벌을 합해도 7년6개월이 최고 형이다. 하지만 특례법을 적용하면 사망자 1인당 5년씩 계산해 최고 100년 형을 선고할 수 있게 된다.
과거 대규모 인명피해 책임자에게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사례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특례법 제정의 계기가 된 세월호 사건만 보더라도 현행 형법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처벌을 내릴 수 있다. 살인죄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도주선박죄가 인정되면 무기징역형 선고가 가능하다. 학계에서는 처벌 강화 등 형법 개정의 필요가 있다면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손질하면 된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여론에 따라 즉흥적으로 국가 형벌체계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자연 수명을 고려하면 100년 형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런 형벌체계를 채택하는 일부 국가도 실제 수감기간은 30~40년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국민의 법 감정을 달래기 위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특례법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심각한 인명피해 사고를 야기하면 엄중한 형벌이 부과되도록 하겠다”고 밝힌 뒤 급조됐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국가 법체계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회로 공이 넘어간 만큼 법조계를 비롯한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합리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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