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좇던 치열한 20대에서 여유로움 찾은 30대 여배우로 성숙
의사 역할만 벌써 세 번째 망가지고 사랑스러운 캐릭터 욕심나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한 tvN 드라마 ‘갑동이’에는 살인마 갑동이를 쫓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하무염(윤상현)과 양철곤(성동일) 형사뿐 아니라 갑동이에게 피해를 본 여성도 포함돼 있었다. 꽤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진 여인이다. 연쇄살인범이 보는 앞에서 가위바위보 하나로 목숨을 건졌다. 김민정(32)은 가위바위보에서 바위를 낸 친구가 살해되고 자신은 보를 내 목숨을 건졌지만 죄책감과 분노에 휩싸인 채 성인이 된 오마리아를 연기했다. 축 처진 어깨에 차분한 표정을 짓는 오마리아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남의 정신을 치료해주는 정신과 의사로 출연했다. 복잡미묘한 느낌이 나는 어려운 캐릭터였다.
21일 ‘갑동이’가 종영된 뒤 서울 신사동의 카페에서 만난 김민정은 “내면 연기가 어려운 캐릭터여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여자’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조신한 정신과 의사로 보이지만 짙은 스모키 화장에 가발을 쓰고 범인을 잡으러 다니는 이중생활을 합니다. 내면이 복잡한 캐릭터였어요. 드라마가 종영하기 일주일 전에는 제 스스로 저의 연기를 돌아봤어요.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하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어려운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에 저 자신에게 감사해요.”
그렇다면 당신의 연기에 만족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천만에요”라고 손을 저었다. “20대의 저는 굉장한 완벽주의자였어요. 혼자 나름 치열했죠. 대본이나 캐릭터가 이해되지 않으면 연기를 할 수 없었거든요.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30대가 되니까 마음에 여유로움이 생기고 그것이 편안한 연기로 이어졌어요. ‘갑동이’ 촬영 현장에서 PD, 작가, 스태프들과 의사소통을 하며 제 역할에 충실했던 것에 만족해요.”
‘갑동이’를 비롯해 최근 각 방송사들은 장르물을 표방하며 권력에 도전하는 등 심각한 스토리의 드라마를 쏟아냈다. 여주인공들도 한없이 심각해져 웃는 장면이 거의 없었다. KBS ‘골든크로스’의 이시영, SBS ‘쓰리 데이즈’의 박하선이 그랬다. “’갑동이’ 20부 중 웃는 장면이 딱 세 번 있었다”는 김민정은 “우는 장면이 너무 많아 스스로 (우는) 기계라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즐거운 신을 촬영하면 배우도 엔도르핀이 돌겠지만 ‘갑동이’에서 눈물 흘리고 심각한 연기를 했던 김민정은 그 반대였다. 하루 종일 우는 신을 찍을 때는 스타일리스트가 휴지와 메이크업 솔을 들고 따라다녔다.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던 ‘갑동이’였다.
김민정에게는 세 번째 의사 역할이었다. tvN ‘제3병원’(2012), MBC ‘뉴하트’(2007) 등에서 레지던트로 출연했었다. 그는 “만약 두 드라마와 똑 같이 수술하는 장면이 있었으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 ‘갑동이’ 대본이 들어왔을 때 ‘왜 또 의사야?’ 했죠.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대중이 별로 지루하지 않게 여기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작사들도 투자해서 만드는 드라마인데 저를 발탁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자신감이 들더라고요. 여유롭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선택했죠.”
김민정은 ‘갑동이’에서 수술로 바쁜 레지던트가 아닌 정적인 모습으로 환자를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를 차분하게 연기했다. “기품 있는 이미지가 좋았다는 평이 있어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도 남다를 듯하다. “영화 ‘밤의 여왕’이나 ‘제3병원’ 등 ‘갑동이’ 전작들의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고민입니다. 지금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갈 것인지 아니면 선머슴이나 왈가닥처럼 털털한 모습을 보여드릴지. 사랑스러운 캐릭터도 하고 싶어요. 제 안에 숨은 그 무엇인가를 아직 다 보여드리지 못해서 욕심이 생겨요. 보글거리는 퍼머에 사투리도 쓰면서 망가지는 캐릭터는 어떨까요?”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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