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가르는 휴전선에만 철조망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타인, 세대, 계층 간에도 높고 질긴 단절의 철책이 존재한다. 이것이 갈등과 분열을 초래한다.
행주대교 북단에서 한강 서쪽으로 이어지는 철책은 낡고 흉물스러웠다. 군데군데 뜯겨나가 받침대만 남은 철조망은 새로 난 자전거도로와 비교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초병 없는 군 초소는 무성한 잡초 사이에 버려졌고 강변으로 통하는 쪽문은 휑하니 뚫렸다. 무장간첩이나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하던 철책은 본래 기능을 상실한 채 오래된 벽처럼 서 있었다.
이미 존재 이유가 사라진 낡은 철책이 습관처럼 사람과 강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철책을 따라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 역시 40여 년간의 단절이 몸에 밴 듯 무심히 지나친다. 차단된 시간이 길어진 만큼 분단은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단절의 일상화. 철책의 가장 무서운 본질이다.
철책은 군부대나 휴전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나와 남, 내 것과 네 것 사이에 철책을 세우고 담을 쌓는다. 세대간 계층간에도 높고 질긴 단절의 철책이 존재한다. 개인의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해 철조망을 두르는 경우는 주위에 흔하다.
재산 위한 철조망
3주전, 경기 파주 심학산 둘레길을 걷던 심모(74)씨는 산책로 입구를 네 곳이나 가로막은 가시 철조망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 인근 군부대의 훈련용으로 생각하고 발길을 돌렸지만 나중에야 둘레길 토지 소유자들이 재산권을 주장하려 철조망을 친 사실을 알았다. 아무리 사유지라지만 탐방객들을 볼모로 이익을 얻으려는 행태가 못마땅했다. 심씨는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철조망은 점점 늘어날 것 같다” 며 걱정스러워했다.
종교적 신념 위한 철조망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바깥 세상과 단절을 자초한 경우도 있다.
‘세월호 진실 규명하면 현상금 5억’이라고 쓴 현수막 뒤로 가시 철망을 둘러치고 앉은 그들에게는 세상의 법이나 상식보다 신앙의 가치가 우선인 듯 하다.
계층을 구분하는 울타리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누리기 위해 담장을 쌓기도 한다. 서울 길음동의 한 아파트 단지는 일반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사이에 높은 울타리가 쳐 있다. 좁게나마 나 있던 쪽문도 15cm 두께의 콘크리트 벽으로 막혔다. 집값 하락을 우려한 일반 분양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통행을 막은 지 10여 년째다. 당시 강력하게 항의하며 소송까지 냈던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벽으로 막힌 문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면서도 “사실 통로 바로 앞이 주차장이라 애들 다니기에 위험하긴 하다”며 말끝을 흐린다. 높은 울타리와 콘크리트 벽으로 인한 단절이 지속되면서 계층간의 격차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대화와 소통 부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지금, 자신부터 주변에 얽어놓은 단절의 철조망을 걷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흔한 갈등과 반목의 단상들을 모아 한강 하구 철책선에 격문처럼 붙여 보았다.
머지않아 사라질 낡은 유물에 함께 실어 보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진부 기획팀=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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