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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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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의 교훈

입력
2014.06.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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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변호사ㆍ서강대 로스쿨 겸임교수

사람이 말한 내용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 특히 직접 듣는 자리가 아니라 제3자를 통해 전해 듣고 판단하는 것만큼 달콤한 유혹이자 치명적인 위험도 없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직접 들을 때 듣는 이의 감정이나 생각에 따라 내용이 달리 해석될 수 있다. 하물며 그 자리의 분위기, 앞뒤 상황, 말한 이의 어감, 표정 등을 전혀 보지 못한 채 전해 듣는 것만으로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 특히 한 사람의 진로나 그 사람 자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경우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사람에게 형벌을 주어야 할지를 판단하는 형사재판에서는 법정에서 직접 증언하는 내용이 아니고 제3자가 전달하는 것은 내용이 아무리 결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증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전달하는 이가 경찰과 같은 수사기관일 때도 마찬가지다. 경찰수사에서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하고 자백한 내용이 조서에 기재되고, 피의자가 지장을 눌러 찍었더라도 법정에서 조서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해 버리면 조서는 휴지조각이 돼버린다. 경찰이 억울하다 해서 자백을 들은 다른 경찰관을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도 소용없다. 이것이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전문법칙(傳聞法則ㆍHearsay rule)이다.

경찰이 무고한 시민들을 괜히 잡아다가 죄를 덮어 씌울 일이 얼마나 있을까. 또 전문법칙 때문에 검찰이 똑같은 수사를 한 번 더 해야 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 예산은 얼마나 엄청난가. 효율성으로만 보자면 낙제점을 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외형상 비효율적인 규제를 두는 이유는 단 하나다. 만에 하나라도 피의자가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요컨대 전하는 말(傳聞)이라면 경찰의 말이라도 쉽게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법의 명령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사회에서 어떤 사람의 말을 앞뒤 없이 일부만 딱 잘라내 그 사람을 공격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일이 만연해 있다. 그런 공격은 주로 언론이나 정치인들로부터 시작된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말한 사람의 전체적 취지를 함축하는 방식으로 줄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목적에 맞게 내용을 골라내 전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정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발언 논란이었다.

전직 국가원수를 이적행위자로 만들 뻔했던 이 사건의 진실은 논란의 중심이던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당직에서 물러나며 한 말에 있다. “노 전 대통령은 (NLL) 포기라는 말씀을 한 번도 쓰지 않으셨다.”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이 NLL을 포기할 수 있었겠느냐. 국가 최고통수권자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영토를 포기할 수 있었겠느냐.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뒤늦게 진실이 밝혀졌지만 그 사이 논란을 제기한 측에서는 정치적 효과를 모두 누렸다. NLL 포기 논란을 제기한 정치인, 논란을 확대 재생산한 언론, 그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어제 물러난 문창극 총리후보의 논란 역시 NLL 포기 논쟁과 같은 선상에 있다. 문 후보와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문 후보 발언의 전체 취지를 보고 판단해야지 일부 발언만 보면 안 된다며 제기한 항변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타당하다. 문 후보 강의의 전체 맥락을 무시하고 일부 발언만으로 문제를 삼았다면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여당과 문 후보측의 상식적이고도 당연한 항변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새누리당과 문 후보를 엄호하는 언론이 얼마 전 NLL 포기 논란에서 보여줬던 비상식적인 태도, 그리고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사과하지 않고 있는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다.

이제 비상식적인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 전하는 말만으로는 몇십만원 짜리 벌금형도 부과할 수 없는 나라의 한쪽에서 전하는 말만으로 인생 전체의 평가가 송두리째 뒤집히고 모욕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번거롭더라도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이것은 현재 집권여당 뿐 아니라 차기 집권을 목표로 하는 야당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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