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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칼럼] 인구정책의 타이밍

입력
2014.06.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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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멸망은 출산기피에서 시작

인구정책은 백년대계로 접근해야

로마는 왜 망했을까. 수많은 원인 중 공통분모는 인구감소다. 애초 로마는 인구경제학의 정합성을 톡톡히 누렸다. 전성기 때는 가히 인구대국이었다. 일찍 ‘인구=국력’에 주목해 강력한 출산장려책을 쓴 덕분이다. 미혼녀에 독신세까지 매기니 아이를 10명 이상 가진 엄마마저 흔했다. 인구보너스가 성장엔진이었던 셈이다. 망할 때는 정반대였다. 출산기피 트렌드로 인구가 급감했다. 청년세대의 비혼(非婚)과 무자녀 기혼커플이 대거 유행했다. 정책대응이 나왔지만 대세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타이밍의 엇박자였다. 로마는 이렇게 멸망했다.

인구감소가 우려스럽다. 하루가 달리 관련통계가 발표된다. 수치는 이미 경고수위를 넘겼다. 심각한 건 인식수준이다. 꽤 무덤덤해서다. 흔해빠진, 고리타분한 일상뉴스로 전락했다. 위기감은 그때뿐이다. 인구절벽에 직면한 일본 등의 반면교사도 소수의 고민에 한정된다. 대책이 없지는 않다. 2003년 출생률이 1.19까지 떨어지자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속속 법률제정(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과 실행계획(새로마지)에 나섰다. 양적ㆍ질적으로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제3기 인구정책의 시작이다. 이게 올해로 10년째다. 아쉽게도 성과는 별로다. 아니 되레 더 악화한 느낌이다. 사실 이는 인구정책의 특징이자 한계다. 어지간한 예산과 시간의 투입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지금까지의 경험칙이다. 교육만큼 복잡한 셈법의 백년대계인 까닭이다.

인구감소는 거대조류다. 지금처럼 출산ㆍ양육이 거대부담으로 직결되는 상황에선 특히 그렇다. 대응책은 최대한 파고를 낮추고 충격을 막을 흡수장치를 갖추는 것이다. 그나마 단기간에는 이조차 어렵다. 높은 관심과 많은 돈을 투입한들 어지간해선 원하는 결과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정치권의 실천유인은 낮다. 그보다는 당장 입소문이 도는 그들만의 저비용 고효율(?) 공약이 더 매력적이다. 즉 목표 실현을 위해서는 일관된 뚝심과 장기적인 자원배분이 필수인 인구정책은 서랍에 방치된다. 이는 인구감소가 우리보다 빨랐던 해외사례의 공통분모다. 인구변화란 묵직하다. 늘든 줄든 추세전환에 상당기간이 필요하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한참 뒤에 멈추는 대형차량과 같다. 충돌을 막고 안전거리를 확보할 선제적인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늦으면 재앙뿐이다.

지금 나서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인구정책이 체질개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책상머리의 인구정책은 곤란하다. 발전경로가 다른 해외정책의 수입도 한계가 있다. 한국적 특수성이 충분히 체화된 맞춤형 인구정책이 최선이다. 그러자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실현동력을 갖춘 정책지향과 실천도구가 필수다. 그때그때 정권지향에 맞춰 덧대는 식의 미세보완이나 궤도수정은 옳지 않다. 훗날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 필요한 건 발본색원의 처방전이다. 가령 인구정책은 가족형성과 직결된 노동법, 사회보장법 등 사회법의 재검토가 첫 단추다. 과거 고도성장 때 만들어진 기반 제도는 설명력을 잃었다. 비정규직이 태반이고 맞벌이가 대세인 마당에 과거모델에 근거한 고용ㆍ임금 체계는 유지될 수 없다. 그 불협화음이 출산포기다. 현실타협의 대증요법보다는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리는데 우호적인 사회법의 재검토는 지금 시작해도 결코 빠르지 않다.

세상만사는 타이밍이 결정적이다. 제아무리 탁월한 정책인들 타이밍이 빗나가면 효과는 낮아진다. 타이밍을 놓친 실기(失期)만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과 노력이 요구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인구감소의 충격적인 미래풍경은 충분히 예고됐다. 방치한다면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지구촌에서 사라질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란 경고까지 있다. 인구감소를 방치한 나라 중에 부흥한 예는 없다. 만시지탄의 교훈을 떠올릴 때다. 로마멸망에서 기시감(旣視感)이 떠오르는 건 필자만은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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