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한국시간) 그리스와 브라질 월드컵 C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갖는 코트디부아르의 16강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현재 2위(승점 3)여서 일단 그리스나 일본보다 한 발 앞서 있다. 긴 식민지와 내전의 터널을 거친 코트디부아르. 와신상담하며 염원한 꿈은 이뤄질까.
이번에도 ‘키 플레이어’는 디디에 드로그바(36ㆍ갈라타사라이)다. 드로그바는 지난 2004년 입단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에서 7년 간 공격수로 뛰었다. 당시 그의 경기력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 팬들 사이에서 ‘드록신(神)’으로 불렸을 정도다. 한국 나이로 올해 37세 노장인 그의 존재감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그리 줄지 않았다. 지난 15일 치른 일본과의 C조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던 코트디부아르는, 후반 드로그바가 교체로 들어간 뒤에만 두 골을 뽑아내며 짜릿한 2대 1 역전승을 일궈냈다. 골을 터뜨린 선수는 윌프레드 보니(스완지 시티)와 제르비뉴(AS로마)였지만 축구 팬들의 관심은 ‘드로그바 효과’에 더 쏠렸다. 드로그바가 일본 수비진을 흔들어놓으며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드로그바가 신으로 불리는 건 축구 실력이 출중해서만은 아니다. 정작 그의 진가는 경기장 밖에서 드러나는 부분이 더 크다. 20세기 코트디부아르의 역사에는 얼룩이 크다. 1893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뒤 70여년 간 유럽 제국주의 통치 아래 신음했다. 많은 국민이 아메리카 신대륙에 노예로 팔려갔다. 1960년 독립한 뒤에도 혼란은 지속됐다. 부정선거와 군부 쿠데타 등에 따른 내전이 이어져, 수만명이 목숨을 잃고 70만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했다.
드로그바가 코트디부아르의 첫 월드컵 본선행(行)을 이끈 건 2005년. 무려 9수(修) 만에 거둔 쾌거였다. 그러나 남부 정부군과 북부 반군 간 내전 탓에 조국 땅에선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그는 자국에 생중계되는 TV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호소한다. “일주일 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 달라.” 그 결과 양측은 잠시 서로를 향한 총부리를 거두기로 합의했고, 2년 뒤 평화 협정과 함께 내전이 종식됐다.
신의 행보는 이뿐 아니다. 2009년 펩시 광고 출연료로 받은 55억원을 고향인 아비잔의 종합병원을 짓는 데 쏟아 부었고 어린이 예방 접종 지원을 위해 매달 3억원을 기부하고 있다.
드로그바는 자국민들에게 기적을 선물해 왔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동포들에게 자긍심을 심었고, 내전으로 찢긴 나라를 하나로 봉합했다. 결집을 통해 다진 저력을 토대로 드디어 코트디부아르는 국제축구연맹(FIFA) 가입국 209개국 중 16강 반열에 오를 기회를 잡았다. 사실상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이 될 드록신이 다시 조국에 기적을 선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우한솔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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