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 있는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 아카이브에는 한국전쟁 기간에 미군이 노획한 다량의 문서와 책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 중 내가 속한 연구팀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 실물 사진을 찍어오는 것이 목적이었다. 열람을 위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열 몇 개의 문서박스를 건네 받은 나는 망연함을 금할 수 없었다. 너덜너덜한 신문 낱장에서부터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친필사인이 적힌 귀한 책까지 계통 없이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노획문건이니 당시에는 그저 쓸어 담았을 것이 분명하고, 이후에도 세심한 분류 작업을 거치지 못한 것 같았다. 하릴없이 나는 박스들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는데, 이 번거로운 작업은 뜻밖에 뭉클한 감동으로 이어졌다. 낡고 바랜 종이 뭉치 사이에는 정갈한 글씨로 야학수업의 내용을 받아 적은 공책이 있었고, 소총을 다루는 것이 아직 서툰 어린 병사의 수첩이 있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 농지개혁의 기치에 부화뇌동했었다며 절절히 참회하는 전향자의 각서도 있었다. 공적인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는, 그때 그 사람들의 이토록 사소한 흔적. 우리나라에 남아있었다면 폐지 처분되었을 것들이 바다를 건너 여태 남아 있었다니. 며칠 전 ‘6ㆍ25’를 무심코 ‘육점이오’로 읽은 후 그 문서들이 떠올랐다. 공식적 기록으로 남은 추상적 숫자보다, 그 숫자에 연루된 삶의 속살이 한층 깊이 마음을 파고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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