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평가 민간기업과 달리 임기도 2년 넘기기 힘들어 "올라가야 파리 목숨" 자조
경영평가 D등급 이하 땐 임원들 성과급 0%로 제한 직원들은 기본급의 200%
"야근에 휴일 없이 일해도 돌아오는 건 낮은 급여" 공기업 개혁 동기부여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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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 A씨는 최근 한 부장급 직원에게 임원 승진을 제안했다. 직장 안팎에서 그의 높은 평판 등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해당 직원의 답변은 매우 뜻밖이었다. “자식들이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요. 지금 이 자리에서 정년까지 근무를 할 수 있게 배려를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6개월여전 민간에서 공공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A씨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A씨는 “이러니 정부가 아무리 공공 개혁을 한다고 난리를 쳐도 공공기관들이 발전을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며 “충분한 인센티브가 없으면 어떤 조직도 활력이 생길 수가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공공기관에서 임원 기피 현상이 확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짧은 임기다. 공기업 임원은 기본적으로 2년의 임기를 보장 받고, 성과에 따라 1년을 더 할 수 있는 ‘2+1’ 구조다. 하지만 실제로 연임을 통해 3년을 채우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 공공기관 임원은 “임원 자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2년 뒤에는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민간기업 임원들은 1년마다 평가를 받지만 능력만 인정이 된다면 5년이든 10년이든 연임을 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무리 잘 해도 연임을 할 수 없다면 누가 의욕적으로 일을 하려고 하겠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러니 임원이 되기 보다는 평직원으로 남아 60세 정년을 채우려는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사 적체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엔 정년을 4~5년 앞둔 1급 직원들이 임원 승진 혹은 유관기관 재취업을 통해 숨통을 다소 터줬지만, 이제는 이조차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한 공기업 부장은 “같은 부장급이라도 근속연수가 많게는 10년 가까이 차이 나는 경우도 있는데, 앞으론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임원과 직원간 연봉 역전 현상이다. 사기업과 달리 공기업은 관련 법령에 의해 상한선이 정해져 있는 만큼 임직원간 기본급여의 차이가 크지 않다. 때문에 근속경력 25년 이상의 1급 직원과 임원의 기본급 역전현상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그래도 대부분 임원들이 성과급을 통해 이를 만회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정부 지침에 따라 임원들의 기본급여가 많게는 수천 만원씩 깎인데다, 경영평가를 통해 성과급을 못 받는 D등급 이하 기업이 30곳(D 19곳ㆍE 11곳)이나 등장하며, 연봉이 뒤집히는 기형적인 사례가 대거 발생하게 됐다.
원인은 경영평가 결과에 따른 임원과 직원의 서로 다른 성과연봉 지급 체계다. D 이하 등급을 받으면 임원 연봉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감소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공기업 임원의 경우, 전년도 기본연봉을 기준으로 S등급은 성과급 100%를 받고, A(80%), B(60%), C(40%) 순으로 적용이 되지만 D와 E등급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반면 직원들은 월 기본급을 기준으로 S등급은 500%를 받고, A(440%), B(380%), C(320%), DㆍE(200%) 순으로 지급된다. D 이하 등급을 받을 경우, 임원은 성과급이 없지만, 직원은 최소 월급의 200%가 보장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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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간접자본(SOC)분야 공기업에서 2년째 임원직을 맡고 있는 F(58)씨의 경우, 올해 연봉은 8,800만원으로 지난해 1억2,850만원보다 4,050만원 급감했다. 회사가 올해 D등급을 받아 지난해 약 2,500만원에 달했던 성과연봉을 아예 받지 못하게 된 것. 여기에 지난해 말 기재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임원 보수지침’에 따라 올해부터 기본연봉 상한선이 ‘기관장 연봉의 80%’로 제한돼, 1,550만원이 삭감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설사 C등급을 받았더라도 ‘과다 부채기관은 성과급을 절반만 지급한다’는 정부 지침에 따라 실제 지급률은 20%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총 급여가 F씨보다 높은 26년 경력의 한 1급 직원은 1,300만원의 성과연봉을 포함해 올해 총 9,150여만원을 받게 됐다. F씨는 “과다 부채기관으로 지정된 후 잦은 야근에 주말, 휴일도 없이 지내며 재무구조 개선에 골몰했는데, 결국 돌아온 건 고참부장 보다 낮은 급여였다”며 “회사를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만 아니라면 이 자리에 있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경영상 주요 결정을 내리는 임원 등 경영진에게 더 엄중하게 책임을 묻을 장치는 필요하지만 지금 같은 기형적인 구조는 근로의욕 저하 등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경영실적 평가를 진행한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예기치 못한 부분인 만큼 적절한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라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공 일변도의 개혁정책이 가져온 이 같은 공기업 내 분위기는 장기적으로 경영정상화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임원들에게 최소한의 보상이 없으면 동기부여가 안 되고, 단기실적주의에 매몰되기 십상”이라며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공기업 체질 강화와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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