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실적 평가에 노이로제, 직원과 임금 역전 기현상도
국내 한 공기업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임원으로 근무한 A(57)씨는 지난 18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를 보고 당혹스러웠다. 지난해 회사가 과다 부채 기관으로 지정돼, 그간 보유자산 매각, 조직 개편 등 다양한 자구노력을 했음에도 ‘기관 경고’에 해당하는 D등급을 받았기 때문. 그는 성과급을 단 한 푼도 못 받게 되면서, 올해 기본급 8,700여만원만 가져갈 수 있게 됐다. 이는 같은 회사에 근속연수 25년 이상된 1급 직원들의 연봉(약 8,500만~9,200만원)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낮은 수준. 임원이 되면 기본급은 큰 차이가 없더라도 성과급을 통해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A씨는 “임원이 직원보다 연봉이 적다면 누가 수긍할 수 있겠느냐”며 “공기업 정상화가 화두라 하소연할 데도 없지만 일할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23일 기획재정부와 공공기관 등에 따르면 정부가 경영실적 평가 등을 통해 공공기관에 대해 강도 높은 채찍을 들이대면서 임원 급여가 직원보다 더 적은 기형적인 ‘임금 역전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임원의 경우 임기가 통상 2년에 불과해 공공기관 고참급 직원들 사이에서는 임원 기피 현상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당근은 없고 채찍만 있는 공공기관 개혁이 공공기관 직원들의 근로의욕 저하 등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임원들의 경우 부채관리, 재무건전성 강화 등 당국의 거센 압박에 업무부담이 커진 반면 그에 따른 보상은 크게 줄면서 속앓이가 늘어났다. 임원 승진의 꿈을 꿔온 고참급 직원들 역시 “정년까지 버티는 게 오히려 낫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로 인해 인사적체 문제 역시 심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근속기간 23년의 한 공공기관 직원은 “평가에 따른 성과급은 인정하지만, 경영상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임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최소한의 인센티브는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더구나 채찍의 잣대조차 수긍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들끓는다. 일관성 없는 평가 기준과 배점, 그에 따른 성과급 차등 지급으로 매년 ‘고무줄 평가’ 논란이 되풀이된다.
전문가들도 공기업 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개혁 작업은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공기업 정상화는 각 기업 임직원들이 그 방향과 방법에 동의할 때 비로소 힘이 생긴다”며 “그간 부족한 것으로 드러난 평가기준의 일관성과 제도의 정교함 등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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