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관광객 예약 몰릴 때면 남한산성 두 세번 오르내려 교통비.점심값 정도가 전부 노력에 비해 근무여건 열악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가치 알리는 데 더욱 힘 쏟아야죠"
23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 입구 안내소는 문화유산 해설사들이 방문객들의 예약을 받느라 여념이 없었다. 전날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탓인지 어느 때 보다 활기가 넘쳤다.
‘남한산성 세계유산등재 추진위원회’가 2009년 결성돼 대외 활동에 집중했다면, 현장에서 묵묵히 남한산성의 역사와 자연의 의미 알리기에 나선 건 문화유산 해설사들이다. 2001년 15명으로 출발한 남한산성 문화유산 해설사 팀은 일부 구성원들이 바뀌었지만 14년째 ‘남한산성 알리미’를 자처하고 있다. 이들을 거쳐간 관광객만 77만4,000명에 달한다. 창단 멤버인 안미애 해설사는 “남한산성을 세계인들이 보편타당한 가치로 인정했다는 점이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해설사의 하루는 팍팍하다. 오전에 단체 예약을 확인한 뒤 관광객들이 도착하면 성곽 투어에 나선다. 하루에 2명씩 교대로 해설하는데, 예약이 몰릴 때면 해발 500㎙ 높이의 수어장대까지 두세 번 씩 오르내려야 한다. 그래서 기초 체력은 필수다. 병자호란을 중심으로 한 조선역사와 건축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자연 생태계, 관광객들을 대하는 기본 서비스와 매너도 갖춰야 한다. 방송통신대에 입학해 따로 공부하는 해설사들도 있다. 2005년 사진을 찍으러 우연히 왔다가 해설사가 됐다는 박창해씨는 “초창기엔 방문객들이 ‘치욕의 장소’로만 인식했는데 점차 ‘극복정신’ ‘저항의 현장’으로 생각을 바꿀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남한산성 ‘관광포인트’는 15곳 안팎이지만 이에 얽힌 이야기들은 수백 개가 넘는다. 그래서 유치원생부터 대학생, 군인, 정치인 등 방문객들의 나이와 연령, 직업 등을 고려해 적절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안 해설사는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모 단체장에 도전한 후보 이야기를 꺼냈다. 그에게 수어장대 근처 매바위는 기(氣)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바위에 손을 대면 좋은 기운을 얻는다는 설화를 들려줬더니 그 후보가 손을 대고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매바위 기운 덕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후보는 선거에서 이겼고 2010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이들의 숨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근무 여건은 열악하다. 교통비와 점심값 정도가 전부다. 10㎡도 되지 않는 컨테이너 사무소도 2009년에야 겨우 마련했다. 그나마 비가 오면 물이 발 밑까지 들어차기 일쑤다. 외국어 전문 해설사 확보도 시급하다. 최근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난 탓이다.
‘숨은 공신’이라는 말에 이미숙 해설사는 손사래를 치며 “소중한 유산의 가치를 더 정확하고 널리 알리는데 더욱 힘을 쏟겠다”며 웃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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