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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SNS 사랑 왜 등단ㆍ출간 경험 없는 사람도 페북 인지도로 높은 판매고 두터운 팬층 마케팅에 효과, 출판사 유치 경쟁 벌이기도
최근 출간된 김주대 시인의 시집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300여명의 ‘주주’가 있다. 시인이 3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안한 소셜 펀딩ㆍ일인당 1만5,000원 정도의 투자금을 받아 정가 1만5,000원짜리 시집을 펴내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 방식에 응해 투자를 결심한 이들이다. 한국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이 독특한 출간 형식에 과연 몇 명이 응할지 의심스러웠지만 펀딩 금액은 하루 만에 1,000만원, 2주 만에 2,000만원을 넘어섰다. 폭발적인 반응에 시인은 펀딩을 중단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책 출간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여름 ‘페이스북 프린스’로 불리는 류근 시인의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가 2만부 이상 판매되며 흥행성을 입증했고 몇 달 뒤 나온 ‘관능적인 삶’의 저자 이서희씨는 등단이나 책 출간 경력이 전무한 데도 페이스북 인지도만으로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그러나 최근의 SNS는 출판사의 작가 발굴 통로를 넘어 제작, 유통, 홍보에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에 앞서 나온 림태주 시인의 산문집 ‘이 미친 그리움’은 ‘페친(페이스북 친구)’들과 함께 만든 책이다. 1994년 등단한 이후 시집을 한 권도 내지 않아 ‘시집 없는 시인’으로 불렸던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대중의 호응을 얻고 시인으로는 드물게 팬클럽까지 결성되자 책 출간을 결심했다. 책에 들어간 사진은 페친들이 보내준 1,000여개의 사진 중 골랐고 추천사는 페이스북으로 인연을 맺은 조국 서울대 교수와 류근 시인이 썼다. 책이 나온 뒤엔 페친들이 열성으로 입 소문을 냈고 출간기념회 대신 열린 북콘서트는 페친들의 우정출연으로 치러졌다.
여행작가 이호준 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묶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를 냈고 블로그에 올린 글이 온라인 상에 회자되며 유명해진 인디 뮤지션 정바비 씨는 산문집 ‘너의 세계를 스칠 때’를 냈다.
팬의 SNS 문인 사랑 왜 작품 外 일상도 엿볼 수 있어 감정적ㆍ문학적 욕구 채워 줘
SNS를 기반으로 한 책 출간은 작가와 출판사 모두가 윈윈할 수 있어 향후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미친 그리움’을 출간한 예담의 정보배 분사장은 “(작가의) 네임밸류가 같다면 SNS 활동을 하는 사람을 더 선호하게 된다”며 “림태주 시인 역시 SNS를 통해 확실한 팬층을 가지고 있고 팬들의 연령대도 구매력을 갖춘 30~40대가 많아 마케팅 측면에서도 좋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인기 있는 사람을 먼저 잡으려는 출판사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정 분사장은 “페이스북에서 주시하던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이미 계약을 했다더라”며 “모든 출판사가 SNS를 눈 여겨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이 SNS를 활용하는 이유는 좀 더 절박하다. 김주대 시인은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면 많아야 500~1,000명 보는데 페북에 발표하면 5,000명, 1만명이 보니까 반찬이 생기고 냉장고가 생기고 술이 생긴다”는 원색적인 글을 페이스북에 쓴 바 있다. 그는 사람들이 시집은 안 사지만 SNS의 시는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시뿐 아니라 시인 자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스북 문인의 상당수는 시 외에도 시의 재료가 된 사건이나 농담, 일상을 찍은 사진 등을 올리는데 이것이 시인과 독자의 친밀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처럼 거대한 감정이 공유되는 시기에 이들이 올리는 촌철살인의 한 마디는 대중의 감정적ㆍ문학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순식간에 팬을 형성하는 동력이 된다.
부작용 목소리도 출처불명 좋은 글귀 모아 유명해지면 장삿 속 출판 창작고통 없는 가벼운 글 범람
‘SNS 문인’에 대해 창작의 고통 없이 가볍게 쓴다는 비판도 나온다. 순수 창작이 아닌 출처 불명의 글을 올려 유명해진 뒤 책으로 내는 경우도 있다. 김주대 시인은 “몸은 현 시대에 있는데 창작 방식은 과거에 매인다는 것이 부조화스럽게 느껴진다”며 “(시가) 대중적이어서 알려지는 게 아니라 시의 본류에 가 닿았기 때문에 유명해지는 사례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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