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를 만났다. 대로변이었다. 눈에 띈 버스 정류장을 향해 뜀박질을 했다. 일대가 공사 구역이라 비를 피할 데라고는 그곳밖에 없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반듯한 차림새라고는 진작부터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두 중년 여인뿐이었다. 그 중 하나가 어머, 갑자기 쏟아지네, 이걸 들고 나왔는데, 하며 꽃무늬 양산을 폈다. 정류장 지붕 밑은 곧 미어터지기 시작했다. 바람을 받은 빗줄기가 사선으로 들이쳤다. 축축한 살갗과 살갗이 닿았고, 꽃무늬 양산의 살대 끝이 이마를 자꾸 찔렀다.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타려던 버스를 탄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금세 그칠 소나기가 아님을 깨닫고 전철역쯤으로 나가기 위해 일단 올라타고 본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정류장은 곧 반쯤 젖은 다른 이들로 채워졌다. 버스가 오면 또 얼마쯤 비었다가 다시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차츰 스산함이 감돌게 되었는데, 어쩌자고 나는 그때껏 대책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일까. 한 명이 더 있었기 때문일까. 들고 나는 이들 사이에서 우두커니 앞만 보고 서 있다 나랑 단 둘이 남게 된 여자. 우리는 몇 번 눈이 마주쳤지만 말을 섞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폭우의 시간을 함께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도로변 배수구로 빗물이 맹렬히 빨려들 때 즈음 나는 결국 그녀를 남겨두고 다음 버스에 올랐다. 시선이 저절로 차창 밖을 향했다. 그녀가 아직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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