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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그까이꺼~

입력
2014.06.2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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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은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37개 작품을 랩, 힙합, 요리쇼 등으로 희화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연희단거리패 제공
연극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은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37개 작품을 랩, 힙합, 요리쇼 등으로 희화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연희단거리패 제공

연희단거리패 '…모든 것' 97분에 작품 37편 버무려, 시종 배꼽잡는 코미디극

"셰익스피어 별 것 없으니 관객은 마음껏 웃으시라"

문화 엘리트주의에 일침

“무식하면 웃지도 말라”고 하는 듯했다. 적어도 극 초반은 그랬다. 멀쑥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배우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만큼이나 두꺼운 윌리엄 셰익스피어 전집을 손에 들고 객석에 질문을 던졌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리처드 2세’를 읽어보신 분 계신가요? ‘존 왕’은요?”

민망한 침묵이 흘렀다. 입가에 조소를 띤 배우가 굳이 “객석에 불을 켜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질 태세를 취하며 관객 50여명을 훑었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학생처럼, 관객들은 배우의 눈길을 애써 외면했다. ‘코미디 극’이라는 홍보 문구를 보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 표정에 ‘속았다’는 비통함이 역력했다. 관객이 ‘존 왕’도 모르는 자신의 무식함을 반성하는 동안, 연극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 본공연이 시작됐다. 셰익스피어 37개 작품을 97분 안에 모두 재연하는 이 독특한 연극을 보기 위해 21일 서울 충무아트홀을 찾았다.

본론에 들어가자 극의 분위기가 반전됐다. 배우 세 명이 노랗고 빨간 의상을 입고 나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1분 남짓한 노래 속에 우겨 넣었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이 연극을 재연하느라 20여분을 ‘허비’했다. 배우들은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과장된 표정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영락없는 코미디였다. 극 초반 잔뜩 힘이 들어갔던 배우들의 어깨가 관객과 함께 웃느라 연신 들썩였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장기흥행한 3인극이다.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해 들여와 28일까지 공연한다. 영국 원작인 탓에 이질감이 있을 법도 하지만 이승헌, 황혜림, 이원희 세 배우의 능수능란한 연기덕에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배우 황혜림이 직접 번역하고 대사를 다듬은 것도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도움이 됐다.

그렇다고 배우의 연기력에만 기댄 작품은 아니다. 연극의 기저에는 상황이 주는 웃음, 즉 ‘시추에이션 코미디(시트콤)’가 깔려 있다. 코미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셰익스피어 희극 15편을 “그 내용이 그 내용”이라며 얼렁뚱땅 제목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대신 “비극이 희극보다 더 웃기다”며 맥베스, 리어왕, 오셀로 등을 힙합, 랩, 럭비경기, 요리쇼에 우스꽝스럽게 대입해 희화한다. 비극이 희극으로 둔갑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관객은 연신 키득거릴 수밖에 없다.

정신 없이 웃음을 선사하던 연극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직전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이미 한 시간에 걸쳐 36편을 모두 재연한 후 ‘햄릿’만을 남겨놓은 상태다. 최고참 배우 이승헌이 ‘햄릿’ 재연에 부담을 느껴 극장을 뛰쳐나가고 황혜림 역시 그를 찾기 위해 무대에서 사라진다. 무대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이원희는 그제야 “배우들도 셰익스피어 작품을 다 읽어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관객은 무대 위에 널브러져 자책하는 이원희를 보며 극 초반 느꼈던 ‘무식에 대한 공포’와 다시 대면한다.

웃음이 사라진 객석에 불이 켜지고 긴장감이 되살아난다. 극 초반 양복을 빼 입고 셰익스피어 전집을 들고나와 거드름을 피우던 이원희가 이제 땀에 젖은 노란 옷을 입고 그 책을 관객에게 전한다. 그리고 “책에 다 나와 있으니 돌려가며 읽어달라”고 읍소한다. 이 전복된 상황을 통해 관객은 마음만 먹으면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연극은 문맹이 대부분이었던 셰익스피어 시대와 달리 오늘날 그의 작품은 고급문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무식에 대한 공포’ 역시 무의미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문화엘리트주의를 교묘하게 비꼰다.

우여곡절 끝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들이 30분 가량 ‘햄릿’을 재연한다. 그런데 재연이 부담스럽다던 이들이 이제는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서로 하겠다고 다툰다. 누구나 아는 이 대사로 시간을 끌며 연극은 묻는다. “너도 셰익스피어 잘 알잖아?”

연극을 마무리하기 직전, 배우들은 “3분이나 남았다”며 ‘햄릿’을 다시 연기한다. 그리고 나서도 “30초가 남았다”며 또 다시 ‘햄릿’을 축약한다. 점점 짧아지는 시간만큼 줄거리 역시 빈약해지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전달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얼렁뚱땅 세번이나 ‘햄릿’을 재연한 이 연극은 “셰익스피어 별 것 없으니, 마음껏 웃으라”며 관객을 다독인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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