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공놀이] ⑨ 조별리그 3R, 동시에 시작하는 이유
대한민국이 알제리에 2-4로 패한 순간, 우리의 머릿속엔 '경우의 수'가 그려졌다. 이번에도 무조건 이겨놓고 러시아가 알제리에 가능한 한 최소 득점, 최소 점수차로 이기길 기원해야 하는 가혹한 운명과 마주하게 됐다.
한국시간으로 24일부터 시작되는 조별리그 3라운드 경기는 1, 2라운드와 달리 한 조에 속한 네 팀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경기를 시작한다. 지금이야 매우 당연하게 여겨지는 규정이지만, 이 규정이 도입된 것은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승부조작 방지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벌어진 승부조작 논란이 결정적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때의 희생양이 오늘 대한민국을 대파한 알제리였다.
알제리는 프랑스에서 독립한 지 20년 만인 1982년, 사상 첫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된다. 본선 무대를 위해 갈고 닦은 알제리는 서독, 오스트리아, 칠레와 한 조를 이뤘고, 첫 판부터 서독을 2-1로 꺾는 대이변을 연출한다.
2차전에서는 오스트리아에 0-2로 패했지만, 3차전에서 칠레에 3-2로 승리하며 2승 1패로 16강 고지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섰다.
하지만 경기 일정이 불합리했다. 같은 조의 서독과 오스트리아는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를 하루 뒤에 경기를 펼치는 일정이었다. 서독은 이기기만 하면 16강에 진출하는 상황이었고, 오스트리아 역시 0-3 이상의 대패만 당하지 않으면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두 팀은 절충을 봤다. 서독이 전반 10분 첫 골을 넣은 뒤 두 팀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고 공 돌리기를 이어갔다. 두 팀의 의도대로 1-0 서독의 승리로 경기는 끝이 났고, 나란히 손을 붙잡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국제축구연맹(FIFA)는 승부조작 논란으로 번진 이 경기에 대해 진상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다만 이전부터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많았던 만큼, 다음 대회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부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한 날 한 시에 진행하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이 같은 규정이 도입된 후 각종 국제대회에서는 흥미로운 결과들이 속출했다. 우리에겐 '도하의 기적'이라는 기분 좋은 추억이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당시 동시에 벌어진 한국-북한, 일본-이라크 전에서 한국이 3-0 북한에 승리를 거두고도 가슴 졸이던 순간, 카타르 도하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패색이 짙던 이라크가 경기 종료 직전 동점골을 기록하며 1994 미국월드컵 본선 티켓은 한국의 손에 쥐어졌다.
한국이 속한 H조 3라운드 두 경기는 오는 27일 새벽 5시 펼쳐진다. 한국과 벨기에는 상파울루에 위치한 '아레나 데 상파울루'에서, 러시아와 알제리는 쿠리치바에 위치한 '아레나 다 바이샤다'에서 경기를 펼친다. '도하의 기적' 그 때처럼, 쿠리치바에서도 낭보가 날아들길 기대해 본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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