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없애자는 정권엔 맞설 수밖에”
“법외노조가 됐을 때 전교조가 입을 피해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을 고쳐야 한다는 쪽이었죠. 그런데 9명의 해직교사와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하지만 우리 좀 꺾자, 일단 눈앞의 매를 피하자’라고 목소리를 낼 순 없었습니다.”
21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이을재(56) 조직국장. 그는 정부가 전교조에게 법외노조 통보를 하면서 법적 근거로 든 ‘조합원이 될 수 없는 해직교사’ 9명 중 한 명이다.
1981년 임용돼 서울 강서여중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이 국장은 전교조 25년 역사의 산 증인이다. 전교조 출범의 싹을 틔웠던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에 이름을 올렸다가 첫 번째 해직을 당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복직했지만 1989년 전교조 설립에 참여한 1,500여명의 교사와 함께 또 해직됐다. 1994년 다시 복직한 뒤 1999년 합법화된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을 맡았고, 이때 상문고 비리재단 퇴진 운동을 하다 징역형을 선고 받아 2004년 세 번째로 교단을 떠났다.
그는 ‘해직자는 교원으로 볼 수 없어 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교원노조법 제2조의 당사자였기에 “마음 편하게 (규약을 고치자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국제기준도 무시하고 밀고 나가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봤을 때 법외노조가 되면 엄청난 탄압을 할 것”이라는 게 그의 걱정이었다.
그러나 한 명의 조합원으로서 그의 생각은 달랐다. “어떤 사람이 노조 활동을 하다 그게 원인이 돼 해고가 됐는데 ‘너는 우릴 위해서 좀 나가줬으면 좋겠어, 조합원이 아니야’라고 한다면 노조 정신에도 위배되고 인간적 도리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처럼 전교조 조합원의 69%는 지난해 10월 총투표에서 규약을 수정하는 대신 법외노조가 되더라도 해직교사를 안고 가겠다는 선택을 했다.
이 국장은 “사실 정부의 의도는 해직교사 9명을 빼내려는 게 아니라 ‘눈엣가시’인 전교조를 없애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뻔히 알면서도 법외노조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전교조가 무력화되면 결국 전교조가 고민해온 교육문제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 아니겠냐”며 “이를 위해서라도 일단은 전교조를 깨뜨리려고 하는 정권에 맞서 조직을 지켜내자는 게 우리들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예전에 비하면 놀랄 정도로 학교 현장의 비리와 비민주적 요소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교조가 학교 현장에서 거둔 성과가 적지 않다는 자평이다. 그는 그러나 “학교장의 비리와 전횡은 많이 없어졌지만 입시경쟁교육, 암기 위주의 교육 시스템, 학생과 교사 모두 행복하지 않은 학교 등 교육 본질의 문제가 남아있다”며 “이는 교장이 결정한 게 아니라 정책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회와 정부에게 요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전교조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해직교사로 산 지 11년째. 전교조 법외노조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그의 소망은 다시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이다.
“학생들은 할아버지 선생이라고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아이들과 만나고 싶어요. ‘공부 못한다고 기죽지마’라는 얘기도 해주고 싶고….” 그는 학교로 돌아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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