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된 듯 보이는 전통의 힘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확인되기도 한다. 현대 가야금이란 다소 낯선 음악 매체가 객석에 보다 구체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을 잇는 연출적 의도가 받쳐 주었기 때문이다. 무대의 마지막, 가야금 연주자 한테라가 홀을 빠져나가며 읊었던 동양적 구음의 신비스런 느낌은 객석의 감성을 자극하기 족했다.
가장 한국적인 볼거리 찾는데 평생을 바쳐온 극작ㆍ연출가 오태석의 ‘백마강 달밤에’ 무대는 한테라가 사라진 이후의 풍경과 맞닿아 있다. 한민족의 성정 깊숙이 내재된 샤머니즘, 때로는 동심의 세계와도 같은 상상력을 오태석은 풍성한 시청각적 이미지로 펼치고 있다. 굿으로 상징되는 한국적 서정의 세계다.
연극이라기보다 대동놀이 마당이다. 특별 출연한 김무철(64ㆍ재민외과 원장)씨에게는 한창 늦은 데뷔 무대다. 극단 목화 후원회의 회장이기도 한 그는 연극 중간에 슬그머니 들어오더니 장기인 색소폰으로 뽕짝을 구성지게 불며 무대를 한 바퀴 돌았다. 그로써 무대는 열린 대동놀이판으로 승화했다. “굿 보러 가자”는 소리에 어깨부터 들썩거리던 옛날처럼. 오태석은 자신의 연극적 자질을 일찌감치 알아본 은사 동랑 유치진의 서거 40주년 기념을 겸하는 이 무대를 아예 가족용 굿판으로 만들었다.
극단 목화 특유의 연극 어법이 능청스러울 정도로 곳곳에 스며들었다. 원형 무대가 시원한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극장은 첫날부터 만원이다. 이래서 오태석이고 또 목화다.
오태석은 시쳇말로 소통의 달인이다. 그러나 영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미학적 선택에 당당하다. 그러나 강요하지 않았다. 모든 세대의 관객들을 자기 식 볼거리 속으로 흡인시키는 설득의 노력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한자말에 젬병인 요즘 세대를 위해 무대 전면 한 켠에 작은 해설 전광판을 두고 뜻풀이를 재빠르게 내보낸 것은 오태석 식 친절이자 새로운 형식의 서사극을 접하는 느낌이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적 본령이 첨단 문명과 정반대인 샤머니즘에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시대가 망각한 우리의 뿌리, 샤머니즘은 이렇게 아주 가끔씩, 황홀하게 강림한다. 첫날 만원 기록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7월 6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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