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신용은 언행이나 약속이 틀림없는 것으로, 개인 간의 믿음을 뜻한다. 경제활동에서 신용이란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갚을 것을 연기하고 돈이나 상품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나 상황, 즉 개인의 지불 능력이나 지불할 의사에 대한 사회적 믿음이다. 미래라고 하는 것은 항상 불확실하기 때문에 갚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신용이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신용이 좋다.’ 혹은 ‘신용이 나쁘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개인의 경제적 활동에 대한 평가이지만 그 사람 자체에 대한 평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신용이 불량하다는 것은 단지 그 사람이 돈이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빚’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신용’이란 신용을 제공하는 쪽의 입장에서 사용하는 말이고, ‘빚’이란 그 신용을 제공받아 사용하는 쪽인 소비자의 입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신용’과 ‘빚’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개념이다. 신용은 얼마나 빌릴 수 있는가 하는 돈의 양이며, 이미 사용한 신용의 양은 빚(부채)이 된다. 신용을 모두 사용하여 빚이 최대가 되면 신용은 0원이 된다는 말이다. 옛말에 ‘월부 좋아하면 패가망신 한다’라는 말도 있다. 이것은 빚을 지는 것, 즉 신용을 이용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로, 신용 이용을 좋게 보지 않았던 옛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은 변하지 않아서, 우리는 흔히 돈은 빌리지도 말고 빌려 주지도 않는 것이 최고인 것처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은 신용을 현명하게 이용하지 않았을 때에만 해당되는 말들일 뿐, 올바르게 이용한다면 신용은 우리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된다. 우리가 사는 지금을 신용사회라고 할 정도로 신용의 사용은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신용은 당장 돈이 없더라도 즉시 만족을 가능케 해 준다. 미래 소득을 현재로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다 주어, 비록 현재 소득으로는 생활이 어렵다고 해도 소비자가 원하는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신용을 이용하고 있는 예는 많다. 신용 카드는 물론이고, 전기나 가스, 휴대폰 등도 서비스는 미리 사용하고 요금은 한 달 후에 지급하는 일종의 신용 행위이다. 그리고 누구나 살아가면서 학자금 마련, 결혼 비용 마련 등 목돈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 신용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충당할 수 있다. 이처럼 신용은 금전 관리에 융통성을 부여해 준다. 신용을 이용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개인의 신용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므로, 앞으로의 경제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해 주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좋은 신용은 개인이나 기업의 경제활동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현재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미래에 대가를 확실히 상환할 것이라는 신뢰를 주어야 하는데, 신용은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신뢰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경제생활에서 신용은 미래의 지불약속에 대한 이행 가능성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사용할 경우를 대비하여 좋은 신용 기록을 쌓아두어야 하며 신용을 이용하기에 앞서 신용을 확보하고 유지해야 한다. 신용관리의 기본은 돈과 관련된 약속을 꼭 지키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에 대해서는 당연히 믿음이 생기고 신용사회에서 ‘신용이 좋은 사람’으로 평가를 받는 것은 자신의 지불능력이나 지불의사에 대해 사회적으로 믿음을 얻었다는 뜻이다. 우리 옛말에 ‘돈이 거짓말을 하지’, ‘돈이 죄를 짓지’라는 말이 있다. 약속을 지키고 싶은데 돈이 예정대로 생기지 않아서 또는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죄를 지었다는 말일 것이다. 금융제도가 발달하지 못했고 상거래도 주로 안면으로 이루어졌던 시대에는 이런 말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지키지 못할 약속’을 용납하는 사회가 아니다. 여기서 ‘지키지 못할 약속’은 바로 자신의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서 신용을 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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