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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공연이 진정한 예술… 일상의 공간서 협연 꿈꾸죠"

입력
2014.06.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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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견고한 팬이 있는 강권순씨는 일본의 우경화 현상과 관련해 "일본이 폐쇄의 위기 의식에 짓눌려 있는 것 같다"며 "지진을 일상으로 겪어서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일본에도 견고한 팬이 있는 강권순씨는 일본의 우경화 현상과 관련해 "일본이 폐쇄의 위기 의식에 짓눌려 있는 것 같다"며 "지진을 일상으로 겪어서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나의 무대는 세계 2005년 호주 멜버른 페스티벌서 한 시간을 혼자 가곡으로만 채워 마이크 안 쓰니 공연 내내 객석 열기

“강권순은 여창 가곡에 일생을 건, 보기 드문 소리꾼이다. 오늘날 알아주는 사람이 너무 적은, 그러나 참으로 보배로운 우리의 여창 가곡이 강권순과 같은 순교자적 사명감을 지닌 소리꾼에 의하여 지켜지고 있으니…”

2004년 1월 강권순의 여창 가곡 음반 ‘천뢰(天?), 하늘의 소리’(EMI)가 발표됐을 때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가 음반에 헌정한 글의 일부다.

냉기 서린 국립국악원 기악 연습실에서 정재국(피리), 이지영(가야금) 등 쟁쟁한 주자들의 반주로 녹음된 그 음반은 경이롭다. 모든 소리를 한 지점에 집중시켜 듣는 사람이 현장의 중심부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원 포인트 시스템이 자아내는 감흥은 여전히 이채롭다. 그 중심부에 피어 오른 꽃 강권순(46ㆍ여창 가곡 이수자)의 청아한 목소리는 가장 정제된 음악인 정악(正樂)의 정수를 즉물적으로 전달한다. 때로는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한번 하면 끝이죠. (나는) 내 생의 흔적조차 남기고 싶지 않아요.” 모든 욕망을 거지발싸개로 만들어 버린다.

비대중적이면서 가장 정통적인 것, 전위와도 맞닿아 있는 동시대적인 것. 이것들을 그는 달인의 경지에서 통합시켜왔다. 그의 무대는 세계다. 아니, 외국에서 그의 존재는 더욱 뚜렷하다. 2005년 호주 멜버른 아트 페스티벌의 ‘선 셋 콘서트’. 그가 한 시간을 혼자 가곡으로만 채운 무대였다. 가곡 10곡 한바탕 전체가 호주 전역에 울려 퍼졌다. 마이크를 쓰지 않는 무대에서 그는 객석의 열기를 공연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버라이어티 쇼가 아니라 정수를 보이자는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나는 소편성을 즐겨요.” 일본 하큐슈 대숲에서 악기 없이 노래만으로 했던 50분, 전주소리축제에서 가곡만으로 50분…

극장 공연은 사라져야 관객과 교감ㆍ호흡하기 힘들어 유명 한옥ㆍ고택 개방 적극 나서야

“아파트도, 회사도 일상에 얼마나 스트레스가 널려있어요?” 최근의 공연들은 탈출구 없는 현실에 대한 나름의 치유였다. 지난해 청와대 녹지원에서 안숙선, 웅산, 팝핀 등과 함께 오케스트라 반주로 가졌던 ‘아리랑’ 협연에서 그는 정가식 해석을 주조로 즉흥까지 펼쳤다. 그 공연은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는데 그의 대중적인 면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지난해 10월 화엄사 각황전에서 했던 40여분 길이의 협연은 음반사 등 극소수 관계자들만 지켜보았다. “외국 민속 관악 연주자와 함께 즉흥으로만 놀았어요.”

저 법열의 경지, 사실 연주자에게만 허여된 축복일 것이다. “연주할 때 기분 좋고, 그러면 된 거 아니겠어요?”

그는 “뒤돌아 보는 게 싫다”고 했다. 사실, 자신이 보듬어야 할 현실만도 숨가쁘다. 그는 세계화와 현재화라는 전통 예술의 양대 과제를 한 몸으로 구현해 보여왔지 않은가. 원일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이 5월 서양 악기와 협연했던 실내악 ‘이름, 문자로 남는다’는 원 감독이 세월호 참사를 보고 지은 곡으로 연주자에게 고도의 즉흥성을 요구하는 작품이었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내려와 달라진 세상을 경험한 영감의 이야기로, 정가 부를 때의 가성, 뒷소리 등 전통 기법에다 현대적 기법을 망라해 인성으로 할 수 있는 다양성을 적극 추구한 작품인데 당시의 협연은 그 가치를 새삼 확인한 자리였다. 지난해 고려대 박물관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컴퓨터 동영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국악 작곡가 유은선의 창작곡을 불렀다. 첫 박물관 공연이었다. “은근히 염려했으나 예술품과 음악의 성공적 결합을 체험했죠. 박물관에서 음악이 ‘전시’될 수 있겠구나 하는.”

‘성북페스티벌’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서울 성북구 성북동 덕수교회 내 한옥에서 가졌던 공연은 자신의 존재감을 색다르게 인식한 계기였다. 그 곳에 살았던 주민으로서 ‘주민 예술가’로 선정된 그가 가야금, 생황과의 협연 무대에 응한 것이다. “바로 코 앞에서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아, 이게 바로 내가 찾던 공연 형태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남양주 궁집에서 이뤄진 열 두 가사 현장 공연도 그랬다.

후배들에게 하고싶은 말 국악ㆍ양악 접목에 전통문화 기반 중요 오리지널을 더욱 철저히 보존해야

동시대와 호흡하는 전통 문화의 기억은 그에게 여전히 가슴 벅차다. “연습 행위도 사람들과의 교감이죠. 생활 속의 진정한 예술이에요.”

일반 시민에게는 정규 공연장이 일상의 공간이 아니다. 따라서 그는 공간과, 공연의 새 형식이 늘 고민이다. “북촌, 서촌, 갤러리 밀집 지역 같은 데가 얼마나 훌륭한 공연장이에요?” 우연히 지나치다 보고 궁금해서 다시 오는 주민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마이크를 들고 극장에서 하는 국악 공연은 사라져야 해요.” 사랑방이 제격인 정가 공연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유명 한옥이나 고택을 예술가와 연계해 개방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악에 입문하고 철 든 이래 계속 고민한 문제가 이른바 세계화다. “정말 갑갑해요. 대중화 한답시고 국악 가요를 만들어 봤잖아요?” 이제 문제는 세계화와 전통이란 두 마리 토끼다. 서양 악기의 국악 연주, 국악과 양악의 협연은 견고한 전통 문화의 기반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기가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전통은 더욱 철저히, 오리지널하게 보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20~30대 후배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농현의 맛 같은 시김새 말이에요.” 3년째 하고 있는 ‘붓다’에서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는 과정을 천천히 묘사하다가 청중 일부가 우는 것을 보았다. 공명정대한 정가를 듣고 울다니. 이유를 물어 보았다. “슬픈 건 아니고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가 치밀고 올라왔다”는 답이었다. 청아함의 극치와 조우했을 때, 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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