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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의 두 유전자

입력
2014.06.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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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또 일을 저질렀다. 지난 3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한미일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앞서 국회에서 “고노 담화를 수정할 의향이 없다”고 발언한 지 3달 만에 고노 담화를 훼손할 의도가 명백한 검증 결과를 발표, 양국 관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 해 12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쟁 피해국의 공분을 자초한 것도 모자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얄팍한 꼼수로 흠집을 내려고 한다. 집단적 자위권 헌법해석 변경, 특정비밀보호법 국회통과 등 아베 총리의 행보는 그야말로 정치적 독단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정가에서는 아베 총리가 보수성향의 정치관과 독단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을 두 명의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인 요인으로 분석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전자는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고, 후자는 아베의 조부 아베 히로시다.

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 우익이다. 태평양전쟁을 주도한 도조 내각에서 국무장관을 지냈고, 한때 도조와 함께 A급 전범으로 분류된 적도 있다. 헌법 개정을 기치로 내건 자민당 창당에 관여했고, 총리가 된 후에도 헌법 개정을 주도했다. 아베가 그토록 헌법 개정에 고집하는 것도 자신의 정치적 원류로 삼았던 기시의 숙원을 스스로의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기시의 인간적 기질은 아베와 사뭇 다르다.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밀어 부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과 반대파의 의견을 존중해주면서 설득하는 스타일이었다. 일본 정가에서는 기시가 아베처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아베 총리의 할아버지 아베 히로시는 기시와 친구이면서도 정반대의 정치적 사상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39세 때 야마구치현 히오키의 촌장에 당선된 히로시는 이후 중의원에 진출, 기존 보수 성향에 정치에 반기를 들고 신흥 정치세력의 결집을 도모했다. 그는 일본의 무기 수출을 금지시킨 미키 다케오 전 총리와 함께 일본 전역을 돌며 평화발전의 길, 전쟁을 하지 않는 길만이 일본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연한 일화는 유명하다.

히로시는 기질적인 면에서는 기시와는 달리 타협을 하지 않는 반골 성향이 강했다. 1942년 도조 히데키 내각이 전쟁에 반대하는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치른 익찬(翼贊)선거에 일부러 출마, 군국주의를 비판하며 당선된 것은 그의 올곧은 성격이 투영된 대표적 사례다.

아베 총리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이런 아버지를 장인인 기시 보다 더욱 존경했다. 신타로는 한 연설회에서 자신을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사위”라고 소개하자, “나는 아베 히로시의 아들”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히로시는 아쉽게도 아베 총리가 태어나기 8년 전인 1946년 숨졌다.

후일 정계에 입문한 아베 총리는 할아버지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를 선거구로 택하면서도 정치적 자양분은 외할아버지 기시의 보수 우익 성향을 고스란히 답습했다. 기질적인 면에서는 할아버지의 반골적이고 올곧은 성격을 흡수하는 듯 했으나 지나친 나머지 주변을 배려하지 않는 독단으로 치우치는 성격으로 변했다. 일각에서는 두 유전자의 가장 최악의 조합이 아베라는 정치인을 만들어 냈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뜩이나 위기에 몰린 일본의 외교가 아베 총리의 독단으로 더욱 힘들어지게 됐다. 독단의 길은 가면 갈수록 돌아오기 힘들다는 사실을 아베 총리는 언제쯤 깨달을지 궁금하다.

한창만 도쿄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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