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사참배 강행 이어 고노담화 검증 과거사 반성에 먹칠 국제사회 신뢰 잃을 수도"
이번 일본 아베 정부가 고노 담화 검증 목적이 담화 작성 경위만을 객관적으로 조사하는 것일 뿐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힌 것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자국내 보수여론을 만족시키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행동으로 보인다.
아베 정부의 애매하고 모순된 행동은 사실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아베 정권은 집권 후 ‘강한 일본의 건설’과 ‘전후체제로부터의 탈피’의 실현을 모색해왔지만, 이러한 비전이 강한 반대에 부닥칠 경우에는 기존체제를 바꾸는 정면돌파 보다 현 체제의 틀을 유지하되 그 안에서 비전을 사실상 실현하는 정치행보를 취해왔다. 아베 정권은 집권 초 일본의 재무장을 금하는 평화헌법 9조의 수정을 추구하다가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개헌논의의 초점을 제9조에서 헌법 개정 절차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 제 96조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바꾼 바 있다. 그 시도도 벽에 부닥치자, 이제는 각의의결을 통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사실상 제 9조의 재해석을 추구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이번 고노 담화 검증 보고서 발표는 한국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일본에게는 커다란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먼저 한국정부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한미일 삼각공조의 책임론에서 한층 자유로워졌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 없이 한일 간의 고위급 회담은 무의미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아베 정부는 아무런 조건 없이 한일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하였다. 그 결과 일본은 미래지향적인 파트너라는 평가를, 한국은 과거사 문제에 집착하여 큰 틀을 보지 못하는 ‘갈 길이 먼데 자꾸 발목을 잡는 국가’라는 오해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에 이은 이번 고노 담화 검증 논란으로 인하여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태도를 줄기차게 요구해온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와 이해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인 납치문제 재조사 합의 같은 독자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일본과 북한비핵화 국제공조와 남북경제협력과 화해 프로세스를 조화롭게 추구하는 한국 중 어느 국가가 한미일 삼각공조에서 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를 강조해야 한다.
이 기회에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를 상대로 ‘일본은 현상유지를 선호하는데 한국이 한일 관계의 판을 흔든다’는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지난 30년간 일본인과 일본 정부가 스스로 채택하고 계승해왔던 역사화해와 과거사 반성의 근본토대를 흔든 것은 한국의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일본의 아베 정부였다는 점을 잘 설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고노 담화 검증은 향후 북일 간 납치문제 재조사 과정에서 부메랑이 되어 일본을 괴롭힐 가능성이 있다. 북한과 일본은 상대방이 교섭 및 협상 내용을 국내정치적 계산에 따라 나중에 검증할 수 있다는 부담을 가지고 협상 및 조사에 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물증채택, 관련자 증언의 신빙성 확인 등 납치문제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의 상당한 지연이 예상되며, 북일 간에 어떤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그 합의사항은 향후 일본 국내정치와 북일 관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만일 북일 납치재조사 협상이 진전이 되어서 가까운 미래에 김정은 정권이 일본인 납치자와 실종자에 대하여 사과하는 공식 담화문을 발표한다고 상상해보자. 발표 후 20년 후에 북한 정부가 태도를 바꾸어 ‘담화를 수정할 의사는 없으나 그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기보다 일본의 요구와 외교적 타협의 산물이 아닌지에 대하여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납치문제 특별조사를 둘러싼 북일 간의 교환의 경위 보고서’를 채택하는 북한식 담화검증을 추진할 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납치문제 재조사로 시작된 북일 협상이 북일 국교 정상화까지 이르기에는 ‘신뢰할 수 있는 사과’의 문제가 큰 변수로 계속 작용할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이를 배제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이 생겼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