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어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분 인정한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 한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내용을 담은 검증결과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이로써 한일 양국 관계에 또 한차례 풍파가 일어, 실낱 같은 기대가 싹텄던 양국 관계 회복 전망에 먹구름이 끼었다.
보고서는 당시 일본 정부는 자체 조사에 따른 사실관계를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한국 정부의 뜻을 일부 수용했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모집과 관련, 일본측 원안에는 ‘군 당국의 의향을 받은 업자’라고 돼 있던 표현이 한국측의 뜻을 배려해 ‘군 당국의 요청을 받은 업자’로 바뀌었다는 구체적 사례를 들었다. 나아가 양국 정부가 이 같은 문안조정 사실을 공표하지 않는다는 데 뜻을 같이했고, 담화의 기초가 된 한국인 피해자의 증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사후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까지 담았다.
보고서의 이런 내용은 한국 정부와 국민의 반발은 물론이고 일본 우파의 고노 담화 폐기 요구를 부추길 게 뻔하다.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일본의 혐한(嫌韓) 움직임에 비추어 일본 국민에 한국의 ‘지나친 간섭’ 인상을 심고, 고노 담화의 순수성과 신뢰성을 적잖이 해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의 진의가 의심스럽다. 일본 정부는 그 동안 담화 작성 과정의 검증 및 보고서 작성ㆍ제출은 국회의 요청에 따른 것일 뿐 고노 담화를 평가절하하거나 그 취지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왔다. 고노 담화 재검증과 보고서 작성의 직접적 계기가 일본유신회 야마다 히로시 의원의 집요한 질의였다는 점에서 일견 그럴 듯하다. 그러나 총리 취임 전부터 고노 담화 수정 의욕을 내보였던 아베 신조 총리가 나중에 야마다 의원을 격려한 것으로 보도되는 등 교묘한 역할분담 색채가 짙었다. 고노 담화 유지ㆍ계승 다짐도 미국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겉으로는 고노 담화 유지를 다짐하면서 그 작성 과정의 절차상 문제를 따져 실질적 사문화를 기도했다고 해석되는 이유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국회 질의답변 단계에서 일찌감치 외교관례를 들어 검증요구를 차단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외교교섭의 구체적 경과는 일정 시점까지 공개하지 않는, 국제적으로 정착된 관행을 깨면서까지 공개하고 나섰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한국의 한결 같은 요구는 일본 정부의 언행일치다. 적잖이 손상된 고노 담화의 유지ㆍ계승 다짐이라도 충실히 이행하는 게 불신을 조금이라도 씻는 길임을 일본 정부에 일깨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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