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바다를 없앤다고 하지 않아서.” 세월호 침몰 참사 직후 교육부가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하자 트위터에 기발한 촌평이 올랐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유례 없는 사고에 다른 학교들이라고 아무 일 없는 듯 수학여행을 떠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단 자숙하는 게 마땅했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감도 컸다. 사고가 터진 만큼 안전시스템도 재점검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조치에 냉소와 야유가 들끓었던 건 서남수 장관의 ‘황제라면’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문제가 터지면 치열한 개선을 통해 일이 되게끔 하려는 노력 대신 일단 금지부터 하고 보는, 관료주의적 구태가 한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야유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금지 행정은 요즘 더욱 가관으로 치닫고 있다. 엄연한 목적과 취지에 따라 교육과정에 잡혀 있는 수학여행이나 수련활동을 무조건 금지하는 건 무책임한 행정 편의주의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졸지에 학창시절의 즐거움을 잃게 된 학생들의 불만도 불만이거니와, 심각한 소비 부진도 문제였다. 이런저런 눈치를 보던 교육부가 보다 믿을 만한 안전시스템을 강구하는 대신 유치한 꾀를 냈다. 수련활동 등을 추진할 경우 학부모 80%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각급 학교에 지시한 것이다.
학생들의 단체 교외활동에 대한 학부모 동의안은 언뜻 그럴싸해 보이지만, 지극히 얄팍한 ‘면피행정’일 뿐이다. 우선 당국의 분명한 교육적 입장이 없다면, 수학여행이든 수련활동이든 한낱 놀이에 불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단순히 찬반을 묻는 요식적 동의절차를 통해서는 어떤 학교도 80%의 찬성을 얻기 어렵다. 결국 동의는 교육부가 학생 교외활동을 실제론 금지하면서도 대책 없이 금지만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한 셈이다.
80% 동의를 구하는 저의도 가소롭다. 80% 이상의 동의를 얻는다고 활동의 안전성이 높아질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동의는 사고가 터질 경우 어떻게든 책임을 학부모들에게 떠넘기려는 술수 밖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담화를 통해 국가개조 의지를 비장하게 천명했지만, 관료들의 구태는 전혀 변화할 기색이 없다. 부산 외대 신입생 환영회 참사 때 체육관 판넬 지붕의 하중을 받쳐줄 기둥이 없었던 구조가 문제였지만 안전점검 당국은 아예 판넬 지붕은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이고, 해양부는 선박 운송물량 초과가 문제라니까 현실적 최선을 강구하려는 노력도 없이 즉각 허가취소 카드를 꺼내 드는 식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의 한심한 행태를 소개했지만,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나 국가개조의 목소리를 높일수록 전반적 현실은 몰락한 스페인 축구마냥 점점 더 지리멸렬해가는 느낌이다. 계속되는 국정공백 속에서 관료들의 ‘셀프 개혁’에 맡겨진 ‘관피아 척결’은 구멍이 숭숭 뚫린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으로 대충 넘어가려는 분위기다. 당ㆍ청 간의 불협화음 속에서 ‘김영란법’ 역시 부지하세월로 표류 중이고, 공공기관 개혁은 관료들의 방치 속에 노조의 저항만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개혁이든 국가개조든 아무리 뜻이 좋아도 일방적 지시와 채찍 만으론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더욱이 인정하든 안 하든, 지금은 대통령의 1인 독주 체제가 고비를 맞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따라서 대통령이 천명한 국가개조를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대통령부터 마음을 열고 강력하게 행정을 장악하고 당정관계를 원활하게 풀어냄으로써 대통령에게 원군이 될 정치적 파트너를 골라 중용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잖아도 박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국가개조의 사령탑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임명하려던 안대희 전 대법관이 낙마한 데 이어, 문창극 후보자까지 거센 사퇴압력을 받게 되자 ‘김문수 총리론’이 부상하고 있다. 김 전 도지사든 아니든, 국가개조는 물론 정권의 성패가 향후 박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선택인 총리 인선과 후속 개각에 달렸다고 본다. 지혜롭고 용기 있는 결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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